강수민, 이상엽 — 파티션과 배리어 (Partition and Barrier)
작가 강수민과 기획자 이상엽은 사물 및 장소 연구 차원에서 2025년 11월 19일 뉴욕에 위치한 세 곳의 병원을 방문한다.
강수민이 작업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 미감, 사물의 작동/오작동 방식, 케어와 감시라는 주제와 더불어 이상엽이 지난 전시들에서 화이트큐브가 아닌 일상의 장소들을 사용해 기획해 온 방식과 서로의 궁금증이 맞닿아 두 사람은 작업과 장소의 리서치 차원에서 병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New York-Presbyterian/Weill Cornell Medical Center(뉴욕 프레즈비테리언/ 웨일 코넬 메디컬 센터)’, ‘Bellevue Hospital(벨레뷰 병원)’, ‘NYU Langone Health(뉴욕대학교 병원)’의 순으로 총 세 개의 병원을 하루 동안 둘러본다. 세 병원은 모두 뉴욕의 동쪽으로 난 이스트강 주변에 위치해 있다.
첫 병원, 뉴욕 프레즈비테리언/웨일 코넬 메디컬 센터의 경우 꼭대기 층인 14층에서부터 로비까지 거꾸로 내려오는 방식, 벨레뷰 병원은 넓은 로비와 일부 층들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살펴보았고, 뉴욕대 병원은 외부인 입장 제한으로 인해, 로비를 한 바퀴 둘러 병원 입구에 비치된 방문자용 소파에 앉아 하루 동안 병원을 둘러보며 느낀 것들에 대해 3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다.
여느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처음의 가벼운 접근과 달리, 병원 입구에 들어서고 층들을 살피며 두 사람은 일종의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에 곧장 사로잡힌다. 병든 사람이 아닌 채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닌 채로, 병든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아닌 채로 병원에 가서 무언가를 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그것을 그렇게 보는 일은 그래도 되는 일이었을까?
이것은 우리가 당장에 소화할 수 없는 장면과 장소인 동시에, 바로 소화할 수 있다고 여겨서도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떤 말을 한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것들에 대해 말해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하루 동안 병원에서 본 것들을 위계나 강조 없이 나열한 뒤 살펴보기로 한다.
병원에서 본 것: 휠체어, 이동식 보조 의자, 커튼, 손세정제, 마스크, 이동식 침대, 수액 거치대, 코너 미러, 추상화, 크록스와 버켄스탁, 손잡이, 종이접기와 그림 낙서, 감사 편지, 호스, 간이 의자, 파티션, GIFT SHOP, 꽃다발, 안내데스크, 가드, 시트, 카펫, 이동식 거치대, 이동식 사물함, x-ray tech area, 꼭대기 층의 벽화, 게시판, Super Nurse, EXIT
병원에서 본 소재: 워크오프 카펫 타일, 스테인리스 스틸, 포셀린 타일, 범퍼 가드, 핸드레일, 고무 마감재, 라미네이트, 아크릴 패널, VCT 타일, 유리


병원에서 본 색: 청록색, 파란색, 하늘색, 소라색, 하얀색, 연두색, 초록색, 연갈색, 갈색, 상아색, 보라색, 연보라색, 연회색, 연분홍색, 고동색, 크림색, 주황색, 은색, 남색, 빨간색


두 사람은 마지막 장소인 뉴욕대 병원 로비의 소파에 앉아 오늘의 병원 경험이 무엇으로 각자에게 남는지 생각해 본다.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떠오른 하나의 단어는 ‘가림막’이었다. 가림막. 우리가 병원에서 가장 많이 본 것, 또 정작 그 때문에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 없게 한 그것. 재료와 질감과 부피를 달리하며 우리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무수한 ‘가림막들’이 잔상처럼 남는다.
실상 우리가 병원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할 수 있는 장소는 복도나 대기실이 거의 전부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가림막을 본다. 가림막은 신체를 가리는 구조가 되어 불특정 시선들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몸이 노출되는 상황을 막고, 공간을 분할한다. 그렇기에 가림막은 사물인 동시에 공간이 되고, 물리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보호/방어막으로 기능한다. 한편, 가림막은 내부와 외부의 막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물질적 경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병원에서 보낸 하루의 시작과 끝에 걷히지 않는 막들이 있다.
강수민 @soomin_the_torangoook
강수민은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로, 몸이 일상의 구조와 마주하며 만들어내는 감각적 협상에 관심이 있다. 가구, 지지 장치, 치료 도구 등 사람을 위한 구조물에서 출발해, 돌봄과 통제, 접근과 배제가 교차하는 지점을 조각과 설치의 형태로 탐구한다.
이상엽 @sangyeopcci
이상엽은 독립기획자로, 이야기와 이미지를 그에 걸맞는 장소로 연결하는 일을 한다. 삶을 구성하는 기본조건, 경험과 감정이 존재를 통과하는 방식, 영향을 주고받는 일에 관심이 있다. 《The Orange》(LDK, 2025), 《이탤릭체 시간》(남산도서관, 2024), 《마음속》(봄바니에 뉴욕, 2023), 《살아 있는 관계》(남산, 2021-2022), 《장식전》(오래된 집, 2020)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