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성 — 이것이 나의 명상
9월, 베를린 마라톤에 참여한다. 이런 결정은 신중하게 하면 안된다. 덜컥 해야된다. 기분에. 팍! 아싸!

물론 마라톤은 여러번 달려봤지만, 그건 다 옛날 이야기. 코로나 이후로는, 그러니까 대충 한 6년이 넘도록 제대로 길게 달려보질 못했다. 특히 2년 전 스테이폴리오를 맡고부터는 매일 왕복 3시간의 출퇴근 노동에 지쳐서 집에 오면 그냥 먹고 자기만 했다. 그렇게 체중이 5KG나 늘었다. 다시 마라톤을 달리는 건 이런 느슨함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기도 하다.
PT를 등록했고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인바디InBody에 올라간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으니까. 근육량은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뺀다. 밀가루, 설탕, 초가공식품 같은 것들을 멀리하고, 양질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충분히 배부르게 챙겨먹는다.

새 러닝화를 샀다. 지난 18년 동안 러닝화는 나이키Nike만 고집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식스Asics를 신는다. 나이키 아닌 러닝화를 신어도 될까요? 잠시 어색했지만 한 번 달리고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좋잖아. 바보야 왜 발에 맞지도 않는 나이키만 신었냐. 하나만 신어서는 모른다. 여러가지 신어봐야 내 몸에 맞고 안맞는게 뭔지 알 수 있다.

훈련량을 서서히 늘려야한다. 욕심내서 급히 늘리면 정강이가 아프거나 무릎이 상하게 된다. 부상이 생기면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훈련을 멈추게 된다. 그게 최악이다. 답답해도 조금씩 꾸준히 달리는게 좋다. 1월은 25KM, 2월은 50KM, 3월은 75KM, 4월은 100KM
내일은 마음먹고 길게 달리고 싶은데 비 예보가 있다. 마음 먹었는데 못 달리게 되면 아쉽고, 비 핑계로 주저앉기도 싫고, 비 와도 달릴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남산 북측순환로로 갈까? 울창한 나무들이 작은 비는 막아주니까. 잠수교로 갈까? 반포대교가 지붕이 되어 비를 막아주니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행히 비는 안개처럼 흩뿌리는 정도. 이정도면 뛸 수 있지. 성북천 분수광장으로 간다. 여기서 출발하면 3.5KM쯤을 내려가 청계천과 합류하고, 청계천을 따라 또 내려가면 서울숲, 한강이 나온다. 얼마든 길게 뛸 수 있다.
애플Apple워치에 나이키 앱을 켠다. 3, 2, 1, Start-! 스텝은 가볍고 빠르게 1분에 180번.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인 스텝을 반복한다. 비는 미스트 스프레이 뿌리듯이 몸을 적시고, 더워진 몸을 냉각수처럼 식혀준다.

이런 날씨에도 달리러 나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짜다. 날씨 핑계 같은 거 대지 않는 사람들이다.
22KM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15KM쯤 지나 에너지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에너지 고갈이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제대로 안 먹고, 어제도 점심 이후로 제대로 먹은게 없다. 아뿔사. 아까 편의점에서 에너지젤이라도 사먹을걸.
그만두고 싶은걸, 옆에서 달리는 동료 덕분에 겨우겨우 계속 간다. 왼발에 그만 할래, 오른발에 그래도 해야지, 왼발에 그만 할래, 오른발에 그래도 해야지. 한 걸음에 인내 한 번씩, 천 번의 인내를 지나 1KM을 간다.

끝- 드디어 끝-
발을 질질 끌며 문 열린 제일 가까운 아무 식당으로 기어들어간다. 메뉴 고를 기운도 없다. 제일 위에있는 대표 메뉴를 시킨다. 물잔에 물을 담아 벌컥. 캬- 또 한 잔 벌컥. 캬- 또 한 잔 벌컥. 캬- 돼지고기 김치찌개, 계란말이, 공기밥 꿀맛이다. 입 안으로 막 빨려 들어간다. 정신 없이 먹는다. 맛있다. 맛있다. 행복해. 고통과 행복이 이렇게 가깝다.
지난 일의 후회에도, 다가올 일의 불안함에도, 조금도 틈을 줄 여유 없이 온전히 지금 여기 이 순간의 기쁨과 고통에만 몰입하게되는, 이것이 나의 명상.

장인성 @earthwide
머무를만한 가치가 있는 스테이를 엄선하여 소개하는 프리미엄 숙소 예약 플랫 폼, 스테이폴리오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마케터의 일>, <사는 이유>를 썼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