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 이것과 이것
버리기와 치우기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이라는 책을 썼다. 이상하게도 책 쓰는 동안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사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곤도 마리에의 주문을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내겐 안 통하는 주문이었다. 물건에 손대고 설레는지 안 설레는지 확인하는 짓은 민망하고 한심해서 딱 한 번 해봤고, ‘버리기’라는 소재에 관해서라면 나도 어깨를 활짝 편다. <정리의 힘>이 전 세계 44개국에서 1천4백만 부가 팔린 책만 아니었으면 진작 무시했다.
밀란 쿤데라가 <농담>의 프랑스어 번역본이 정확하지도 충실하지도 않다고 문제 삼으며 직접 나서 프랑스어로 번역했지만, 더 나은 번역은커녕 기실 재창작한 재앙이 훌륭한 반면교사다. 밀란 쿤데라가 아닌 나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대신 싫어한다. 싫은 것을 싫어하는 축복으로 살아간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주문은 과거에 머문다. ‘버리다’라는 동사에 새출발을 전제하는 제안이고, 당신에게 정말 소중한 뭔가만 남기라는 참으로 감상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아시스 바이닐을 버릴지 말지로 고민하지 않는다. 엘라스티카와 슬리퍼 중 뭘 버릴지로 고민한다. 애매한 추억과 애매한 애정 때문에 방황한다.
버리기는 단지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새로운 음반을 더 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집에 새로운 음반을 수용할 공간이 모자라서 버렸다. 좀 더 개념적으로 들어가면, 과거의 관심보다는 현재의 관심이 중요해서,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잘 보는 사람이고 싶어서 버렸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주문은 자신의 ‘인풋’이 끝났다는 인정 같다. 의미 있는 과거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앞으로 뭘 더 알고 싶은가, 앞으로 뭘 더 추구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빠져있다. 그래서 차라리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의 말을 더 좋아한다. 책장을 항상 여유 있게 유지하라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장할 여백을 상징한다.”
누구나 가능하다면 버리기보다 치우고 싶다. ‘치우다'는 중세 한국어 ‘틔우다’가 ‘티우다’로, 그것이 근대의 한국어로 정착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그 뜻의 기원이 “막힌 것을 열리게 한다”다. “어수선하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없애”는 ‘치우다’가 정리라면, “다시 쓰거나 찾지 않을 생각으로 내놓거나 내던지는” ‘버리다’는 처분이다. 정리해 둘 만한 다른 공간이 있다면, 정리하지 않아도 새로운 문물을 들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처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버리기는 돈과 벗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치울 수 없어서 버린다.
나는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에서 ‘버리다’를 ‘판매하다’ 이후의 의미로 사용했다. 물론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주문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닐 테다. 하지만 판매되지 않았거나 판매할 수 없었던 음반들을 버리기 위해 또 글을 쓰기 위해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버리다’는 선물하다, 거부하다, 기부하다, 인정하다, 헌정하다, 작별하다 이기도 했다. 물건에 손대고 설레는지 안 설레는지 확인하는 것보다는 덜 미친 사람 같지 않은가 한다. 맞다, 나는 손을 무의미하게 쓰고 싶지 않다.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가츠가 어둠의 해일에 맞설 때 종교에 집착하는 파르네제에게 뱉은 말이 내 복음이다. “기도하지 마! 기도를 하면 손은 놀잖아.”
정우영 @youngmond
에디터.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2025년 11월,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