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 예술이 피로할 때, 테메노스
언제부터 나에게 예술이 이토록 피곤한 것이 되었을까. 무엇이든 업이 되면 가장 좋아하던 일이라도 어느 정도의 괴로움을 동반한다지만 이것은 괴로움이기 이전에 예술의 막대한 산업화와 마이크로 테크놀로지 속 정보 포화로 인한 무감각이고 그래서 사실은 좀 더 슬픔에 가깝다. 구조적 무감각함에 예술의 영역마저 침범 당해버린 내가, 그리고 다수의 예술 노동자들과 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슬픔, 그것은 이 무더운 여름, 일상적 자연과 노동의 착취 속에 불가피하게 가동되는 에어컨에서 실외기로 배출되는 텁텁한 공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예술과 전시가 10분 안의 인증샷으로 문화 향유를 증명할 수 있는 빠르고 확실한, 그러나 표면적인, 에너지 효율적 보상의 논리에 해당되는 매체가 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의 중간에서 그레고리 마르코폴로스를 돌아본다. 1940년대 미국의 아방가르드 필름씬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작업 상영을 거절했고, 미국의 영화예술 산업에 회의를 느낀 그는 1970년대에 그의 파트너와 유럽으로 이주한다. 이후 그는 60편이 넘는 필름을 20년이 넘게 더 만들며 그가 여태껏 만들었던 필름까지 재편집하여 명확한 순서를 따르는 80시간의 무성영화 <Eniaios> 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영화 아카이브 및 영사 공간에 대한 비전, '구별된 장소, 신성한 구역'이라는 뜻의 '테메노스'라는 프로젝트를 준비해 나갔다. 1992년 마르코폴로스의 사망 이후, 이는 그의 파트너에 의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마르코폴로스의 아버지가 태어난 그리스의 시골 마을에서 테메노스는 2004년부터 2024년까지 5차례의 스크리닝을 통해 18개의 영상까지 상영되었다. 매 회차, 여러 재단과 작은 개인의 후원과 봉사, 사랑으로 지속되는 작업의 복구와 이 행사는 무료로 진행되며 상영 전, 테메노스 측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해가 질 무렵부터 완전히 가라앉는 풍경 속에서 4시간의 필름 영상을 다 함께 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1-2차례 더 진행되면 <Eniaios> 상영의 한 사이클이 이삼십 년 만에 끝난다.
나는 한 번도 테메노스를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중 Eniaios 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7분의 필름을 1시간 길이로 편집해 늘려놓은 <Gammelion> (1967) 은 유튜브에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까맣고 하얀 화면의, 수많은 트랜지션이 대부분이고 사실 촬영한 푸티지는 별로 없다. 빛이 땅의 피조물 위로 정교하고 우아하게 조각되는 시점과 공간에서 촬영된 그마저도 찰나에 지나간다. 영상의 초반에 나오는 목소리는 말한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소비되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고갈되지 않는 빛으로 빛나는 것.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견디는 것.” 필름을 위한 필름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마르코폴로스의 논리는 이것이지 않았을까. 소비될 것을 고갈되지 않는 빛으로 비추며 다가오는 사라짐을 견디는 것. 때문에 7분이란 시간은 그로부터 영원으로 변신한다.
뉴욕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갤러리 오프닝들을 제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할 수 없던 어느 날, 그냥 이 필름을 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몇 년을 기다린 후 테메노스에서 저물어가는 태양과 검붉어지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세상이 마르코폴로스가 돌돌 말린 프레임 뭉치 안에 고이 지켜온 그만의 시간이 몇십 년을 거쳐 여러 사람들의 사랑으로 소환되는 순간 속의 나를. 높은 확률로 나는 <Eniaios> 를 전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로 갈 비용이 있다면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그것이 마련되었을 때는 테메노스가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것을 빠짐없이 참여하기란 분명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이 시공간 자체가 된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완전히 소비되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고갈되지 않는 빛으로 잠시 지침을 거두고, 나는 사라짐을 앞둔 예술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산 중턱 뒤로 태양이 넘어갈 때, 각자의 테메노스가 필요하다.

출처: Temenos 홈페이지 https://www.thetemenos.org/

A still photo from Gammelion, 1967
조정민 @nowherejmc
화이트노이즈 디렉터이자 독립기획자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큐레이팅이라 불리는 관련된 일들을 한다. 세상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발굴하길 좋아하며 호흡이 긴 예술의 생산과 소비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