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3년 뒤 내가 연세대 간다 꼭!!!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았다던 서울 구로구 오류동 한가운데에는 이제 철길이 놓였다. 1호선 경인선은 서쪽으로 온수역, 동쪽으로 오류동역을 잇는다. 선로 위 오류철도고가차도는 또 다른 것을 연결하고 있다. 예림디자인고, 서울공연예술고, 세종과학고, 덕일전자공고 등 다양한 학교 학생들이 다리를 걷고 있다. 침을 뱉고 있다. 흰 교복 셔츠를 꺼내 입기도 넣어 입기도 하는데, 어울려도 어울리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는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오류고가는 1999년 2월 9일 준공됐다.

200m 정도 되는 오류고가는 달리는 차들로 시끄럽다. 왕복 4차선도에서 먼지바람이 불고 맑은 하늘 아래 가을볕은 쏟아진다. 눈을 가늘게 뜬다. 불투명한 방음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고가에선 오직 앞과 뒤만 열려있다. 인도는 방음벽과 울타리에 둘러싸여, 끝이 보이는 아가리를 통과하듯 서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아,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기차가 지나면 발밑이 울린다. 딴 길로 샐 수 없는 고가를 걷다 보면 긴 기차, 그보다 긴 가을 하늘, 긴 방음벽 철골과 조금 상관없는 학생들의 낙서가 있다. 

나는 오류고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면서 다음의 낙서를 순서대로 적었다. 3년 뒤 내가 연세대 간다 꼭!!! 똥 묻은 돈이당 설사에 밥말아 머거쟈. 잘 사귀고 있냐. you’re my sunshine. 여기 지나─좆되.(‘─’로 표시한 부분에는 ‘201( ) 년 ( )월 ( )일’이라고 적힌 흰 스티커가 붙음. ‘지나가면’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섹스 자위 애무. 용사가 마지막으로 마왕과 싸울 때 쓰인 방패. 보지. 방금 지나간 사람 ㅋㅋㅋ. 오늘 창틀에 걸쳐앉아봤어. 갈 고등학교 없다 ㅠ.ㅠ. 

 

연세대로 시작해 고등학교로 끝난다. ‘간다’에서 출발해 ‘갈 곳이 없다’고 마무리된다. 방음 패널과 패널 사이 H형 철골 지지대마다 검은색 마커로 쓰였다. 가끔 흰 페인트로 된 낙서도 있다. 방음벽 밖에서 고가 안쪽으론 볕이 들어온다. 항구도시 여인숙 벽지처럼 노랗게 뭉개지는 듯하다가도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희미하기도 하다. 우듬지를 올려보면 알 수 있다. 잎과 잎 사이로 빛이 떨어지다 말다 하는 것을 바람이 결정한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걷다 뛰다 말다 한다. 눈이 부시다 말다 한다. 나도 그랬다.  

 

오류고가 남쪽 끝 진입로와 연결된 방음벽 뒤편에는 ‘제계’란 단어가 흰 락커로 쓰였다. 낙서 아래는 버려진 해바라기 줄기가 있다.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아이스 커피잔, 공장 폐기물 자루, 부서진 라바콘이 사람처럼 널려있다. 제계? 재계(대기업 집단)도 아니고 무슨 단어인지 찾아봤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을 오르내릴 때 디딜 수 있도록 만든 기구. 일이 잘되거나 벼슬이 올라가는 차례. 여러 가지 계통. 학생들은 높은 다리 초입에 적힌 제계란 글자를 알아보았을까. 2025년 11월 13일은 수능이었다.

 


최용준 @talkingconcrete

시(詩)와 꿀벌을 좋아한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