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웅 — 지능이 떨어지는 브금
음악 감상 동아리 'Being 可愛い'의 지난 7인치, 그리고 내년 봄을 목표로 제작 중인 12인치 컴필레이션까지 모두 '가상의 쇼핑몰 사운드트랙'을 콘셉트로 삼았다. 왜 쇼핑몰 사운드트랙이냐? 계기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나와 영남은 80년대 미국 쇼핑몰의 귀여운 엘리베이터 뮤직에 관해서 가끔 이야기했는데, 그러한 우리의 막연한 동경이 시작점이지 않았을까.
2010년대의 베이퍼웨이브 음악을 여전히 즐겨듣고, 그 원류까지 쫓으니 쇼핑몰 엘리베이터 뮤직에 닿았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 뮤직의 존재가 희미했기에 느꼈던 동경심과 마트, 백화점 구경을 좋아하는 내 개인의 취향이 뒤섞여 꽤 즐겨 들었다. 또한 흥미로운 건, 지난 몇 년을 꾸준히 감상해 온 몇몇 게임 음악과 비슷한 성질을 여기서도 발견했다는 점이다.
쇼핑몰의 엘리베이터가 층과 층 사이를 잇는다면, 게임의 설치는 현실과 가상을, 로딩은 챕터와 챕터 사이를 잇는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로 필연적이었던 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발자와 작곡가들은 여러 음악들을 심어두었다.
Square Enix의 PlayOnline
2000년대 초반, 스퀘어 에닉스는 'Final Fantasy XI' 등을 서비스하기 위해 통합 런처 'PlayOnline'을 선보였다. 당시 유저들은 끝없는 업데이트와 패치를 기다리며 이 청아한 사운드트랙을 접했다.
PlayOnline - Dolphin
Nintendo의 로딩 음악들
공백을 가장 예민하게 의식했던 게임사는 단연 닌텐도였다. 닌텐도 자사의 앱은 모든 환경에서 독자적인 사운드트랙이 흘렀는데, 설치와 로딩, Wi-Fi 및 네트워크 커넥팅 등 플레이어가 머무르는 시간이 다소 짧아 음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까지도 예외는 없다.
독자적인 하드웨어와 포켓몬, 마리오 같은 강력한 퍼스트, 세컨드 파티 프랜차이즈를 구축한 닌텐도였기에, 자사 게임기를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설계할 수 있었다. 이는 ‘오모테나시’ 정신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특유의 정성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Wii - Downloading Latest News
Wii의 뉴스 채널에서 최신 뉴스를 다운로드 받으며 기다릴 때 흘렀던.
3DS - eShop Loading
닌텐도의 온라인 콘텐츠 쇼핑몰 'eShop', 인터넷을 통해 가상의 닌텐도 상점으로 이동하는 로딩 구간에서 플레이어를 환대한 음악.
Wii U - Miiverse Loading
닌텐도 전용 SNS 'Miiverse'에 접속하기 직전 로딩 화면의 사운드트랙.
Mario Kart 8 - Wi-Fi Menu
'마리오 카트 8'은 온라인 서버를 통해 전 세계 유저와 레이싱이 가능했다. 이 음악은 서버 접속 및 플레이어 서치 화면에서 등장했다.
Mass Effect 1의 시타델 엘리베이터 씬
'Mass Effect 1'의 시타델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우주 정거장의 기술적 한계를 자연스럽게 감추기 위한 장치였다. 시타델은 규모가 큰 만큼 지역 간 이동마다 로딩이 필요했다. 개발팀은 로딩이 플레이 흐름을 끊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캐릭터들을 긴 엘리베이터 탑승 시간에 머무르게 했다. 그동안 엘리베이터 내부에서는 파티원들의 짧은 대화나 브리핑이 흘렀고, 동시에 실제 엘리베이터 음악을 연상시키는 보사노바풍 배경음이 재생되었다.
Mass Effect 1 - Elevator Music
2년 전, ‘지능이 떨어지는 브금’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알고리즘을 탔다. 동물의 숲 OST를 갈무리한 1시간 분량의 플레이리스트인데, 당시에는 “어그로를 끌려고 제목을 이렇게까지 짓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표현이 의외로 꽤 정확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기다림의 시간이 완전히 비어 있진 않지만, 정작 손과 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잠시라도 뇌를 비우고, 말 그대로 ‘지능을 떨어뜨려(?)’ 손가락을 쉬게 하고 싶다면, 엘리베이터 뮤직과 로딩 음악이 그런 공백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황선웅 @sunx2g
에디터, 멜로디컬한 음악을 수집하는 컬렉터. 수집한 게임음악 레코드를 바탕으로 세 장의 믹스테잎을 제작했다. 귀여운 게 최고인 음악 감상 동아리 ‘Being Kawaii’의 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