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 — 쓰기 싫음 일기

금정연 — 쓰기 싫음 일기

질문) 다음은 내가 주로 쓰는 것들의 목록이다. 이중 내가 쓰기 싫은 것을 고르시오. (3점)

  1. 신경

  2. 시간

 

[2026.04.20. 집] 

정답) ② 신경

해설) 

  1. 돈은 쓰고 싶은데 쓸 수 없다. (없으니까)

  2. 신경 쓰기 싫지만 자꾸 쓰인다. (모든 것에)

  3. 글을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싫다. 내가…)

  4. 시간은 그냥 부족하다. (왜?) 

 

모두에게 똑같은 24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라고 쓰고 보니 모두에게 똑같은 24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A와 B는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해 같은 연봉을 받는 동기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A와 달리, B는 매달 100만원의 월세를 내며 동생들의 학비까지 대야 한다면 그건 같은 월급일까?

 

때론 원고를 쓰는 동안 쓴 생활비가 원고를 쓰고 받을 원고료를 초과하기도 한다. 실은 자주.


 

질문) 다음은 내가 이달 안에 써야 하는 원고들의 목록이다. 이중 내가 가장 쓰기 싫은 것을 고르시오. (2점)

  1.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시인] 리뷰(8매) / 4.20. 마감

  2. 채널예스 신간 큐레이션(15매 이상) / 4.22. 마감

  3. 고교 독서평설 연재(인물 소개 30매+신간 소개 5매) / 4.30. 마감

  4. 조지 오웰 책(750매) / 4.30. 마감

 

[2026.04.08. 궁동 근린공원] 

벚꽃이 피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벚꽃이 피고, 갑자기 추워지고, 비가 오고, 날이 더 추워져서 이게 봄이 맞냐고 불평하다 보면 벚꽃이 지고, 비로소 봄이 온다. 

 

[2026.04.15. 작업실] 

봄이면 데버라 리비를 읽는다. 

 

[2026.04.13.] 

그리고 걷는다.

 

[2026.04.11. 동네]

고양이를 만나고 

 

[2026.04.14. 망원동]

개를 만나고

 

[2026.04.14. 망원동]

친구들을 만나고

 

[2026.04.16. 화성동탄중앙도서관]

독자들도 만나고

 

[2026.04.16. 원당역 건너편]

더는 갈 곳이 없어질 때까지 

 

[4월 9일, 작업실] 

하지만 갈 곳은 늘 있고, 써야 할 것도 늘 있다. 

 

[2026.04.09. 작업실] 

나는 작업실에 돌아와 책을 쌓는다. 

oh, well, well, well 중얼거리며… 

 

[2026.04.12. 동네]

그러다 답답해질 때면 셰익스피어의 말을 떠올린다.

 


[the charles bukowski tapes (1987) 중에서]

“좆까, 그리고 나는 셰익스피어도 좋아하지 않아!”라던 찰스 부코스키의 말도… (톨스토이였나? 헷갈린다)

 

방금 이 부분을 쓰고 있는데,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가 스윽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황급히 노트북을 덮고(욕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는 아랑곳 않고 펼쳐진 노트를 보더니 연필을 들어 이렇게 적는다.

 

 

 

이럴 땐, 세상 모든 걸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금정연 @pop7rash

읽고 쓰는 사람. 매일 쓰는 것은 일기. 최근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을 출간했다. 글쓰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