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민지 ─ 명절 가족 특선 풍경

마민지 ─ 명절 가족 특선 풍경

명절과 가족은 세트처럼 붙어있는 단어이다. 명절 특선이 곧 가족 특선이고, 명절 연휴가 곧 가족 연휴인 그런 사회적 분위기랄까. 그래서 명절은 평소보다도 더 ‘정상 가족(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 형태의 가족)’ 테두리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가 얼마만큼 ‘정상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연휴이다. ‘가정의 달’인 5월보다 더욱 그러하다. 5월에는 ‘정상 가족’의 느낌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기념일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명절은 엄마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엄마와 느지막이 영화관에 갔다. 그리고 명절 연휴를 맞아 개봉하는 상업 영화를 봤다. 소화가 덜 되었더라도 L사이즈 반반 팝콘은 포기할 수 없었다. 집에 들러 마트 타포린 장바구니에 남은 음식을 가득 담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아빠는 5만 원권 한두 장을 용돈으로 주었다. 엄마와 개찰구를 마주하고 배웅 인사를 하면 장녀의 도리는 모두 끝나는 것이었다. 도리를 수행해야 했지만, 그럭저럭 화목하게 봉합되어 있던 핵가족 정상 가족 테두리 안에서 안락하게 지낸 편이었다. 이건 2021년까지의 이야기.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면서 나는 명절마다 매번 무엇을 해야겠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빠를 모시고 봉안당에 갔다가 인근에 있는 절로 합동 차례를 지내러 갔다. 봉안당에서 차례를 지내는 유가족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합동 차례 역시 차례를 간소화하기 위해 외주를 맡긴 셈이니 그곳에도 다시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대부분. 아빠와 나 역시 적은 수이지만 가족 단위였다. 스님의 말씀은 명절인 만큼 ‘정상 가족’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올해 설날에는 짝꿍과 함께 ‘비정상 가족’으로 합동 차례에 동행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매인지, 형제인지, 남매인지, 부부인지, 무슨 사이인지 정확히 유추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수많은 ‘정상가족’ 사이에 침투해서 채식 떡국을 먹고 짧은 사찰 산책을 했다. 아빠가 아니라 짝꿍과 명절에 절에 있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고, 원가족을 평균적인 또래들에 비해 빨리 떠나보낸 서러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상실에 대한 슬픔도 밀려왔다. 그리고 나의 위치를 다시 가늠해 보게 되었다. ‘정상 사회’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린 그런 느낌. 나쁘지 않은걸?  


나는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 캐셔 언니들과 담소를 나누며 지낸다. 그중에서 엄마와 동향 사투리를 쓰는 언니에게 유독 더 친밀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해 명절에 그 언니가 물어봤다. “부모님 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어?” 나는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님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맛있는 건 많이 먹었어요!” 언니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고 말았다. 언니는 갑자기 계산대를 벗어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오더니 단감 한 줄을 손에 쥐여주었다. “나도 고아야. 부모님 다 돌아가셨잖아. 우리 다 고아지 뭐, 안 그래?” 언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유교 나라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씩씩한 고아가 될 운명이다. 서로의 시기만 다를 뿐. 


사실 명절 영화로 노년의 퀴어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대한 <메종 드 히미코>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주인공인 사오리의 모습에서 장녀의 도리를 수행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함께 경단을 빚고 노래를 합창하는 입주자들의 모습을 보며 씩씩한 고아 혹은 유사 고아인 친구들과 전을 ‘부치’며 명절을 보내는 모습이 겹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써보려 했는데, 그냥 <메종 드 히미코>를 한 번 더 본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설에는 짝꿍과 절에 다녀와 친구들과 포트럭 파티를 하며 가요대전을 보았다.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아무 말 없이 멍하게 방송을 보고 있는데 어찌나 ‘정상 가족’의 명절 풍경 같던지.

마민지 @mente_ma

독립영화 감독. 영화 <버블 패밀리>, <착지연습>을 만들었고,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썼다. 주로 살면서 겪는 차력 쇼를 영화로 찍거나 글로 쓰며 골계미를 가미해 승화시키고 있다. 세 번째 영화 <나의 두 번째 가족>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