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용 — 전지무능할 뻔했다
필자는 공부를 좋아했다. 과부하 된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 알게 되는 것에 많은 쾌를 느끼며 살아온 듯하다. 이러한 부분이 싫증을 금방 느끼는 성격을 만들었는지, 두 가지 별개의 성격이 시너지를 일으켰는지, 많은 분야 속 넓은 필드에 여권 도장을 받아본 듯하다.
헌터x헌터 340화 「세계의 크기」 中
토가시 센세의 현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 같다.
(1)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경계선 안의 세계가 테란 대표들이 정해둔 현시대 인류들의 한계선의 내부에 위치한다는 점
(2) 이 테리토리가 생각보다 정말 작다는 점
(3)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많은 개인들이 그 영역 밖의 세상을 탐구하고 싶어 했다는 점
(4) 누군가에겐 한계선 내부의 질서로도 충분하고, 또 다른 누군가 들은 경계 밖의 삶을 보고 싶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
이야말로 완벽한 사이버펑크가 아닌가 싶다.

현시대 대한민국엔 사이버펑크의 생존자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물론 유행의 흐름과 기술력 스노비즘으로 태어난 기계 팔-디스토피아 썸띵-뮤턴트들이 많이 생겨나긴 하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를 건드리는 존재들은 거의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cyber'란 접두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조타수, 배의 키를 잡는 선장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사실 사이버펑크의 핵심적 개념으로 생각된다.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방향을 정하여 항해하는 결정과 행동이 이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필수 요소이다.
70%가 바다로 이루어진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는 사실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덮어버리는 꿈과, 바다를 건너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요구되는 순간순간마다의 결정들이 쌓여 현재의 세계지도를 그려냈다.
물질만능주의의 여파로 인한 과도한 발전 또는 인간의 욕망이 뒤덮인 3차 세계대전 이후, 어두운 네온사인 덮인 상하이, 서울, 도쿄 등 이색 국가에서, 기계 팔 달린 적과 싸우는 인공 수정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떠한 매체보다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전설 속의 보물 '원피스'를 찾아 바다를 돌아다니는 뱃놀이가 더 사이버펑키하다.

사이버펑크에서는 전지전능한 무언가에 의해 세워진 질서가 배경으로 깔리게 되는데, 이를 바이러스(변수)로 인식되는 인간 개체가 맞서 싸우는 형태로 대다수의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는 사실 인간 주체로 현세를 살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명확한 숙제이지 않을까?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전 어떤 시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동시대의 정보처리 능력이란, 많은 양의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가 사실(근거)에 기반하였으며, 이 상황에는 어떠한 정보의 활용이 필요한지 여과하는(-) 작업이 아닐까?
마쓰오카 세이고의 "지知의 편집"에 따르면, 인간이 창조해 낸 모든 작업이라 불리는 것들은 아래의 4가지 단계를 거쳐 생산이 되었다.
(1) 合わせ (합치기 : Matching)
(2) 重ね (겹치기 : Stacking)
(3) 競い (경쟁시키기 : Competing)
(4) 揃える (가지런하게 하기 : Flattening)
마쓰오카 세이고 ‘지知의 편집’
필자는 이를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 +, ×, −, ÷ 의 사칙연산에 대입하며 살아왔다. (같은 수치를 단계별로 적용하였을 때, 가장 큰 값으로 나눌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리타분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나 역시 고리타분하게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서도, 공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수학능력검정시험이라 명명된 일종의 퀘스트는 습득(Matching, +)된 정보만을 검증할 뿐이다. 이 뒤의 단계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고, 내 주변에도 교사의 직업을 갖은 동년배 친구들이 생기고서야 문득 깨닫게 되는 부분이지만, 사실 이런 단계의 유무를 교육자들도 모르고 있을 확률이 크며, 결국 이 방법론은 (인위적 접근이 없다면) 자연히 전승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레 이렇게 애매한 목적의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는, 이제는 변해야 된다는 결심이 들어서다.
스스로를 사이버펑크족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몇 년간을 이제서야 되짚어보면, cyber만을 추구했지, 단 한 번도 punk의 마인드셋을 품었던 적이 없었다.
이는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공부(정보 습득)을 좋아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듯한데, 그동안 +와 ×만 가지고 거대해진 숫자로 골방 환상곡만 만들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너무 오랜 기간 치고받고 싸워왔다.
이토 준지 「인간실격」 2화 中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원작)
자의 55% 타의 45%로 세상 밖으로 나온 2021년부터 2년간 많은 시행착오(돌풍)를 겪었지만, 이를 헤치고 순탄한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 ÷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cyberpunk가 좋다며 아키텍트(전지전능한 자)가 되고자 했던 나를 반성하며, '제일 잘 하는 나'이기를 포기하는 동시에 '보다 잘 먹히는 나'로 살아보고자 한다.
지능이란 결국 지+능일 터인데, 지력에만 몰빵한 캐릭터가 될 뻔했다.
Hyukoh - Paul 中
아… 하마터면 전지무능할 뻔했다.
송태용 @wwwcy4nwww
창작을 ‘제도’가 아닌 ‘게임’으로 바라보는 기획자. 내러티브를 입힌 공간과 제품, 먹는 전시와 입는 언어를 만들어왔고, 예술과 기술 사이의 비가역적인 혼합을 탐구한다.
RPG 코스튬샵 KIZIP, 글로벌 아트 커뮤니티 갤러리 워터마크, ’Edible Idea‘라는 슬로건으로 운영중인 브레드 읍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