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 — 나의 나쁜 웰니스 My Decadent Wellness
Foreword
웰니스를 향하여 세계가 이동하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도대체 뭐길래, 웰니스는.
잘사니즘? 잘 지냄? 잘살기?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있기?
스스로 꽤나 방종한 사람임을 인정한다. 나는 종종 열여섯 시간을 내리 자고, 아예 자지 않기도 한다. 때로 거의 먹지 않고, 춥건 덥건 그저 날마다의 공기에 색을 맞추어 옷을 걸쳐 입는다. 4계절 슬리퍼를 신고 다니고, 제대로 걷지도 않는 일상이다. 그런데도 몸과 마음은 의외로 부드럽고, 이곳저곳에서 그럭저럭 편하다. 나의 웰니스는....
나의 슬리퍼들 (맹민화 제공)
기능성 옷만 입는 내 친구의 실크 블라우스
선정현이 디자인한 작은 키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100인 안에 드는 선정현. 어깨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다고 푸념하니 내 친구는 애슬레저 룩을 갖춰 입고 (그녀 표현으로 기능성 옷) 일단 문을 나서보라고 한다. “그럼, 기분이 좋아, 몸을 스치는 공기며...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난 기능성 원단만 입어 요즘.” 뛰는 폼을 곁들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는 그 얼굴은 오늘도 상쾌하고 좋다. 환한 얼굴 아래로 멋진 각도로 좁아져 길게 내려오는 깃이 달린,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운 먹색의 블라우스가 보인다. ‘실크인데... (기능성이지, 그렇고말고.)’ 영원한 먹색 블라우스와 비둘기색 슬랙스를 입은 나의 수퍼 디자이너. 아, 르메르라고 한다.
친구 따라 사버린 블라우스 (맹민화 제공)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 영 취하지는 않았다.
1889년 출간된 〈은자의 나라 코리아〉 제3판에 실린 삽화
체코식 육회의 맛, 꿀 케이크와 맥주의 맛, 파인애플 카르파초와 화이트 초컬릿 크림의 맛. 무는 사철 먹기 좋아 채소 가운데 으뜸이라... 전주, 남원 사람 고모나 삼촌보다 더한 고영. 기쁨의 삼박자가 잘 맞는 내 친구, 무엇이든 생산하고 창조하고 상상력 발휘하는 이들과 늘 함께인 나의 선생이자 형님. 근 10년, 어깨 맞대고 요릿집이며 음악당을 열심히 다니며 언제나 조촐하고 예쁜 상차림 앞에서 생활인들과 엮어주었다. 대화 속에 대개 100년 전의 먹거리가 오르기 일쑤여서, 하루가 순식간에 백 년 전으로 굴러가 버리곤 한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렇게까지 진지한 요리사들과 지리산에서 장 담그는 이, 플로우가 남다른 디제이들과 의가 두텁다. 내가 조선호텔 일을 할 때에는 Chosen Hotel을 화면에 띄워 삼아주고, 참깨는 실크로드 건너서 온 게 아닐까— 라며, 환상적 참깨로드를 꿈꾸게 했다. 퇴근길, 함께 어깨를 맞대고 취기에 오르나, 영 취하지는 않았다.
맥주는 술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일까? 가라사대 자양품이다. 1925년 기린 맥주의 광고 컨셉트.(1925년 5월 2일 자 기린 맥주 광고로부터)
맑 깨 깊 이라고 하자.
루이 시마모토가 기록한 김혜정의 도자기 (루이 시마모토 제공)
나의 매실 항아리
국이 나왔다. 좋아하는 삼겹살집에서 갈치김치를 척 올려서 먹다가. 된장이 잘 풀려 흙색으로 빛나는 물. 첫 말이 “맑다!”, 그리고 이어서 한 입 들이키고서 “아- 깨끗하게 맛있어”,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 그런데... 깊어, 깊은 맛이 나.” 루이 시마모토의 말. 그는 일본에서 왔다. 내가 좋아하는 책방이, 선배 디자이너들이 있는 나라. 우주에서 사이꼬 さいこう 인 구기동 삼겹살집에서 찜통 같았던 하루를 구워 먹으며, 우리는 된장국 앞에서 합심하였다. 맑고 깨끗하고 깊다. 그것이 우리가 모였을 때 태어나는 맛, 가마에 무한히 회전한 흙을 구운 후에, 온종일 매실을 다듬은 후에, 어깨며 허리에 카메라가 붙어 버릴 만큼의 하이 캇토 はい カット.... 를 마치고. 다다른 어느 문 앞에서부터, 우리는 맑고 깨끗하고 깊어.
루이 시마모토가 기록한 구기동 물줄기 (루이 시마모토 제공)
Afterword
학창 시절부터 내내 다니던 식당 옆에 사무소를 열고 오가다 보니 20년이 지났다.
나는 무엇이든 이름을 붙이고 얼굴을 그리는 일을 한다. 의미를 연결하고 예쁘게 맺어야만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고, 걸음들을 맞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만든 이름들이 불리운다. 그들은 많은 이들의 손끝에 닳아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투명해진다. 그 투명함을 바라보는 동안, 그래픽디자인, 아트디렉션, 브랜드컨셉션, 또는 브랜딩, VMD, 시각화 전략,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등— 일의 이름들 또한 계속 움직였다. 일의 세계와 함께 물려 돌아가는 가운데, 오늘의 혜원과 내일의 혜원이 서로를 갱신했다. 일이란, ‘잘 돌아간다’는 말 그대로 계속 움직인다. 웰니스적으로.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에서 한 장면
2025 PN7의 상상도.지구와 함께 공전하는 새롭게 확인된 준위성으로, 2083년까지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Pinterest)
당신의 세계는 지금 둥글게 회전하고 있는가?
잘 돌아가며, 한 방향으로 순환하는 동안 다른 이에게 닿고 있는가?
함께 놀거리가 자연스레 생겨나고 있는가?
이 연대가 윤활제가 되어, 당신의 세계도 더 매끄럽고 역동적으로 돌고 있는가? 때로 먼 길을 돌아서라도, 누군가를 끝까지 배웅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가?
이혜원 @lee.hye.won
2000년대 초, 가수 이상은에게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가야 사람’이라고 믿으며 시대의 흐름과 맥락, 사용자의 기호를 읽어내는 눈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아라비라는 이름의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팀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