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환 ─ 폭탄주라는 아이러니
지난 몇 년 동안, 전직 대통령의 뉴스 헤드라인부터 아이돌의 유튜브 술자리까지 수많은 플랫폼을 종횡무진 누빈 술이 있다. 와인 셀러나 애주가들의 커뮤니티, 세련된 칵테일 바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 보면, 이 술이야말로 지금 한국에서 가장 힙한 알코올 장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국산 위스키에 맥주를 말아 마시던 시절부터 소닉워터, 소백산맥, 소메리카노의 황금기까지. 1980년대 처음 등장한 이후 거의 모든 세대로부터 사랑받아온 ‘코리안 칵테일’, 폭탄주다.
해외에도 폭탄주와 비슷한 칵테일은 많다. 재료 구성을 보면 (폭탄주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을) 보일러 메이커가, 테이블에 잔을 내려치는 동작에서는 데킬라 슬래머가 떠오른다. 예거밤을 비롯한 밤 Bomb 계열 칵테일들은 이름의 뉘앙스마저 닮았다. 이 술들은 모두 마시는 사람이 직접 술을 섞는 파티 드링크다. 하지만 그 중 무엇도 한국의 폭탄주만큼 세대를 이어가며 발전하지도, 유사 의식처럼 반복적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폭탄주를 처음 마셨던 건 언제였더라? 스무살의 봄, 대학 선배 하나가 술잔을 탑처럼 쌓았다. 맥주 잔 위에 젓가락을, 그 위에 소주잔을 다시 올린 후 진로 병을 기울이자, 투명한 술이 잔의 표면 위를 분수처럼 흘러내렸다. 흔들고 빠트리고 휘젓는 순간, 유리잔 안의 작고 빠른 소용돌이, 입에 털어넣은 후 술상 위로 내동댕이 치는 술잔. 나는 그 광경을 살짝 얼빠진 채로 바라봤다.
오직 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폭탄주에는 ‘마시다’보다 ‘보다’라는 동사가 더 어울린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폭탄주 제조를 자처하며 나선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제는 화석 같은 폭탄주 용어들 - ‘회오리’와 ‘수류탄’ 등의 명명을 낳아온 술 제조의 스펙터클. 제조자가 자신만만하게 술을 말면, 나머지는 환호하는 관객이 된다.
최근엔 말 그대로 폭탄주를 ‘보는’ 일이 더 잦아졌다. 30대를 지나며 사석에서 술을 마는 일이 드물어진 한편, 검열이 없는 유튜브에서는 술튜브와 술터뷰가 흥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짠한형, 기안84의 술터뷰, 낮술의 기하학… 나열하는 것만으로 몇 줄이 넘어갈 것이다. 밀키스주에 밀키스가 안 들어간다는 사실은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나온 리사 때문에 알게 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이런 포맷이 이제야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진정성의 최상급이 곧 ‘리얼 버라이어티’인 나라에서, 취객들의 대화만큼 도파민을 자극하는 토크쇼가 있을 리 없다. 비꼬는 얘기가 아니다. 출연자들은 정말 친해 보이고, 신나 보이고, 솔직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함께 앉고 싶어질 정도로.
우리는 왜 이런 장면들이 그렇게 진짜 같고, 또 재미있다고 느낄까?
혹은, 왜 우리는 취해야만 솔직해지는 걸까?
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일단 한잔 하자”고 말하는 걸까?
가장 먼저 생리학적인 설명이 있다. 알코올은 이완 작용을 통해 우리의 조심스러운 자아를 누그러뜨린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느슨해진 의식 위에서 시작되는 대화에 있다. 고맥락 언어로서 한국어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 눈치와 해석의 핑퐁이 존재한다. 그러나 술자리에서라면 ‘말해도 되는 것’과 ‘그래도 되는 것’의 목록은 빈 술잔만큼 늘어난다. 어쩌면 우리의 혀는 취한 채 비틀거리다 (맨정신에서는) 부적절한 한 마디의 구렁텅이로 미끄러지길 항상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용할 수 있는 정도의 무례함과 예상하지 못했던 허술함이야말로 친교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을 핑계로 실수하고 싶어하고, 술을 핑계로 좀 더 쉽게 용서한다.
여기에 폭탄주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기폭제로 작용한다. 회식에서 소맥이 그토록 사랑받고, 수많은 술튜브에서 ‘소백산맥’이나 ‘소메리카노’가 요긴하게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정교하고 불필요한 의식에 함께 참여하고, 함께 음식(술)을 만들며, 같은 잔에 그걸 나눠 마신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이들의 도취에 공범이 된다. 축제가 작동하는 방식대로, 폭탄주는 우리를 대화와 웃음 너머 표리부동 따위 존재할 수 없는 난폭한 일체감의 차원까지 단숨에 데려간다. 폭탄주가 몇 잔 오고간 후에도 상대가 멀게 느껴진다면, 관계의 케미스트리에 대해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소맥이라곤 한잔도 등장하지 않는 카더정원 채널의 어느 영상을 보다가 나는 문득 폭탄주의 또 다른 매력에 대해 생각했다. 싱글몰트 마니아 키드밀리가 카더가든에게 피티드 위스키를 권하며 “고소한 맛”이라고 설명하자, 카더가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내가 봤을 때 위스키의 세계는… 가스라이팅의 세계야” 위스키, 브랜디, 전통주, 크래프트비어, 사케… 이제 술의 세계에는 긴가민가 싶을 때조차 시음의 정석을 따라 감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폭탄주에는 애초에 테이스팅 노트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섬세한 지식과 입맛에서, 좋게 말하면 젠체하는 태도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술.
솔직하기 어렵지만 솔직하고 싶다. 예의없는 건 싫지만 빨리 친해지고 싶다. 잘난 척 하고 싶지만 유난 떠는 건 질색이다. 폭탄주는 지극히 한국적인 아이러니 안에서 만들어지는 술이다. 그것은 또한, 오늘밤 낯선 이와 마주앉은 내 마음에서 찰랑이는 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군가 내 앞에서 잔 위에 잔을 얹고 젓가락을 든다면, 나는 그 한잔을 기꺼이 보고 마실 것이다.
P.S. 대여섯잔이 넘어가기 시작했다면, 전직 대통령의 불콰한 얼굴을 떠올리며 페이스를 조절해보는 것도 좋겠다. 친밀함과 무례, 솔직함과 과잉은 종이 한 장 차이이고, 다음날 우리는 숙취와 함께 제정신으로 귀환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의 술자리에서는 편집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머리 속 필름은 깔끔하게 끊어진다고 해도… 아마도 이건 내일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추신이겠지만…
정미환 @clartee
에디터, 애주가.
술과 음식만큼 좋아하는 건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해 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