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승훈아 집에 가자

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승훈아 집에 가자

서울 송파구 잠실철교를 걷다 보면 옆에선 2호선 전차가 내달린다. 사람들은 전차가 지나면 귀를 막거나 뒤를 돌아본다. 똑같은 칸칸이 줄줄이 지나간다. 아마 전차 안에선 고개를 들어 한강에 비친 반짝임을 볼 것이다. 서쪽에는 잠실대교가, 동쪽에는 올림픽대교가 번듯이 있건만 철교라는 단단한 이름 속으로 전차, 차, 사람이 모두 오가고 저 아래 강물 위로 다시 넘실거린다. 철교 남단 시작 부근 흰 울타리에 세로로 Fuck IT 적혀 있다. 몇 걸음 더 갔다. 다 쏘고 내버린 폭죽 몇 개 뒹굴고 있다. 


2026년 1월 2일 잠실나루역에서 내려 강변역까지 놓인 잠실철교 남단에서 북단으로 걷다 난간에 적힌 낙서 순서대로 적었다.

승훈아 안 돼. 승훈아 미안해. 승훈아 사랑한다. 승훈아 집에 가자. 서울시에 따르면 잠실철교 투신 시도 건수는 2022년 21건, 2023년 11건, 2024년 12건이다. 실제 투신은 3년간 매년 3건씩이다. 강변역 부근에 다다르면 한국수자원공사 대형 광고판에 사람 보다 큰 글자로 이렇게 적혀 있다. 물이 여는 미래, 물로 나누는 행복. 집에 가자는 한 뼘보다 작다. 


잠실은 서울에서 집의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서울시는 1963년 행정구역을 한강 이남까지 확장한 후 한강 남쪽을 포함한 서울시 전체의 도시계획인 1965 서울도시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잠실지구종합개발기본계획(1974)은 1960년대 말 폭발적인 서울 인구 성장 속에서 세워졌다. 계획을 수립한 1969년부터 1974년 사이 서울시 인구는 478만 명에서 654만 명으로 연평균 37만 명씩 늘었다.  잠실 계획의 목적은 10만 명을 수용하는 현대적 도시주거타운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잠실 계획은 최초로 집을 중심으로 만든 마스터플랜이다. 기존 개발은 땅과 도로를 조성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 중심이었다면 잠실은 주거의 질적인 부분을 고려한 계획이었다. 주거용지에는 주공아파트 5개 단지 총 1만 9180가구가 지어졌다. 주공 1-4단지는 1976년, 5단지는 1978년 준공됐다. 잠실의 집은 또 한번 집이 된다. 현재 1-4단지는 2006년-2008년에 재건축됐다. 주공5단지는 재건축이 진행 중으로, 완료되면 총 2만 4000여 가구다. 


잠실 ‘국평’(전용면적 84㎡)은 서울 내 강남권 입성의 현실적 목표처럼 여겨진다. 강남구, 서초구는 너무나 비싸 다가설 수조차 없고 그나마 잠실이 접근 가능한 강남권 입성 아파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잠실 주공 1-4단지는 재건축 이후 엘리트(레)로 불린다. 각 단지명이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다시 지어진 엘리트는 서울 중산층 계급 주거단지의 표준 단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트 중 가장 좋은 단지로 꼽히는 엘스의 국평은 3월 5일 34억원에 매매 거래됐다. 


잠실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주공5단지가 논란에 휩싸였던 것은 박원순 시장의 정책인 ‘아파트 흔적 남기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주공5단지를 근현대 도시 유산으로 보고 한 동과 굴뚝을 보존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주민들은 재산권을 주장하며 반발했다. 반면 도시학자 등은 재건축으로 재산 이익을 충분히 가져가는 상황이니만큼 역사성을 지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오세훈 시장 들어 흔적 남기기는 없던 일이 됐다. 

잠실 집의 흔적은 재건축을 통해 사라졌다. 그러니까 잠실의 운명은 계속해서 사라짐과 동시에 생기는 집이다. 태생부터 그렇기 때문이다. 잠실(蠶室)은 조선시대 왕실 비단 생산을 위해 누에를 기르던 관영 양잠시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누에가 고치(집)를 통해 나방으로 탈바꿈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더 이전에는 백제 성읍이었다. 잠실 최초 개발 시 백제의 흔적들은 무분별하게 사라졌다. 1916년에 제작된 송파 잠실 일대 고분 분포도에는 89기, 1917년의 고적조사를 토대로 1920년경 제작된 고분 분포도에 표기된 고분은 296기에 이르지만 현재는 10분의 1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잠실의 다리는 집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잠실대교(1972년 준공)에 이어 거기에 잠실철교가 지어졌다. 잠실대교를 부수고 잠실철교를 만들지 않았다. 잠실철교는 잠실의 주거지 기능과 2호선을 잇기 위해 1979년 준공됐다.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전차가 자동차와 함께 통행할 수 있도록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교량이다. 교폭은 철도가 9.2m, 차도가 양측에 각각 4.4m로, 총폭이 18m이며, 연장은 1270m에 달한다. 잠실을 잇는 두 번째 다리는 그대로다. 

2010년 잠실철교 사진_서울연구원

그래서 승훈아. 나는 네가 돌아갈 집이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다. 승훈이가 재건축 연한인 30년마다 바뀌어버리는 잠실에서 집을 잘 찾아갈지는 더 모르겠다. 하지만 잠실철교는 당장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집은 다시 지을 때 자산이 증식하는 수단이 됐고 교통은 그 자산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다리가 계속해서 있는 편이 집값 상승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승훈이를 찾는 사람은 왜 잠실철교 위에서 미안하고 사랑하고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는가. 그 물음과 관계 없이 교량은 그 스스로가 지닌 은유처럼 튼튼하게 오래도록 이곳과 저곳을 잇고 있다. 잠실 근처에 사는 사람은 잠실철교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또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추억을 새겨 넣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2014년 10월 기록한 잠실철교 낙서는 이랬다. 오빠가 어디에서 무얼하든 오빠만 믿고 사랑할게 2014.5.27. JS. 할매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삽시다 사랑해요 할배가. 올해 내가 다시 철교를 걸을 때는 없었다. 철교는 그대로인데 낙서가 사라진 이유는 잠실 때문인 것만 같다.  

최용준 @talkingconcrete

시(詩)와 꿀벌을 좋아한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