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지 — 아버지를 거역하기
표지- 노나 파우스틴Nona Faustine, <그들은 자신들의 강간과 정복의 산물인 전리품과 제도들로 이 땅을 점령했다>, 트위드 법원청사, 뉴욕, 2013년
명절이 되면 소름 끼치게 많은 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알토란이 들어간 말간 국, 불고기, 푸석한 전, 낭비되는 것들. 집에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큰아버지는 기도를 크게 하라거나 찬송에 마음을 더해보라고 하였다. 큰아버지는 하느님 아버지를 섬겼다. 내 아버지는 큰아버지를,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를 섬겼다. 그러나 이제 그는 무엇도 섬기지 않는다.
명절마다 큰아버지는 내 아버지에게 주기도문을 맡겼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여. 아버지는 말쑥한 얼굴로, 낮은 목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어떤 인생은 신에게 품어지지 않고 통과하기도 한다는 걸 옆에서 바라본 적 있다. 친가 식구들이 내게 허드렛일을 시키려고 하면 아버지는 자기 옆에 나를 조용히 앉혔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보호였을 것이다. 그는 몹시 가부장적인 남편이었지만, 딸들에겐 아버지를 섬기지 않을 자유를 남겨두려고 했다.
아빠의 어린 날.
이선민, <여자의 집2>, 2004년
할아버지는 리어카를 끌며 온갖 기계의 부속, 시계와 같은 것들을 수리하던 가난한 자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보다 가난에서 발현되는 자긍, 잡초처럼 질긴 서정성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사진을 물려받았고 이젠 적당한 거리에서 헤어졌다가 만났다 한다. 사진을 찍으며 가족은 완벽한 타자의 얼굴이 되었고, 시큼한 침냄새가 나는 사이에서 벗어나 좀 산뜻해졌다.
친가 식구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며 기나긴 예배도 자연히 끝이 났다. 그들을 벗어난다고 섬기지 않을 자유가 찾아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진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으니 방방곡곡 아버지들로 난리였다. 얼굴이 희고 눈이 푸르른 아버지들이 신사처럼 강의실 문을 열고 등장했다.
Bonjour ? Donc, tu es la fille chargée de me servir?
Oh, Hello. Are you the daughter assigned to serve me?
안녕? 네가 나를 섬길 딸이니? 아버지들은 사진을 발명했고, 가난과 전쟁의 참상을 알렸고, 이래저래 좋은 일을 많이 하신 걸로 보인다. 헌데 왜 이리 흠결 없이 위대하기만 했을까.
미국 국회의사당의 천장 벽화.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워싱턴의 신격화>, 1865년
강의실에서 융숭하게 소개되는 아버지들의 작업들이 있었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수박이 그러했고, 만 레이의 바이올린이 그러했다. 그 사진들 중 제일 당혹스러웠던 건, 안드레아 세라노가 오줌에 예수상을 담근 사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성 모독으로 인해 유구한 비판을 받아왔지만, 나는 다른 면에서의 그 사진의 불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의 분비물로 대상을 오염시키고 점령하고야 마는 태도. 그 이미지 질서가 전쟁 이후 승리자들이 취하는 비열한 제스처와 비슷해 보였다.
그의 의도가 어찌 됐든, 영국군의 아일랜드인 고문을 주제로 한 다른 작품에서도 동일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다 동료 사진가의 아카이브에서 1999년 제 1회 현대 사진 워크숍 책자를 발견했다. 몇몇 문장에서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다. 지금 인용하는 것은 박찬경 작가의 문장이다.
“매핑Mapping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문제는 지금은 매핑 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또, 이제껏 사진사의 매핑은 미국 중심의 작가, 예술사진 중심(MOMA중심)이었고, 이것을 해체하려면 전혀 다른 매핑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매핑은 화두라고 보며, 적어도 그런 노력은 해야 하는 것이다. (…) 사진가는 반드시 사진으로 승부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사진가는 사진적 실천을 하는 이들로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데이미언 허스트, 2026년.
기무사 건물에서 열린 전시. 《플랫폼 인 기무사》, 2009년.
1999년의 문제 의식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 나오지 못했다. 사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자면,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은 데이미언 허스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로서 소환했다. 미술사에서 유의미하다는 이유만으로 박제된 나약한 존재들을 거듭 쳐다봐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슈렁큰 헤드처럼 열거된. 내게 이 열거가 곤혹스럽게 느껴지는 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자리가 옛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의 터라는 점 때문이다.
그곳은 군사 정권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군사 반란과 민간인 사찰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본거지였다. 미술관이 지어지기 전, 예술가들이 《플랫폼 인 기무사》라는 제목으로 기무사 건물에서 한판 굿을 했다. 험난한 자리의 터굿은 늘 자국의 예술가들이 하고, 날이 지날수록 시의성을 잃어가는 작가에게 번듯한 자리를 내어준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융숭함을 응시의 이유로 삼고자 한다면, 제 발로 다시 어두운 시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콘스턴스 폭스 탤벗, 토머스 무어의 조판된 시 「여름의 마지막 장미」의 복사본, 1843년, 보들리언 도서관 소장
물리적으로 한 아버지의 딸이지만, 아버지를 섬기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을 너무도 오래 섬겨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언어는 내게 고향 같고 언제나 강한 추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언어를 섬기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들을 물고 늘어지고 피냄새가 어른거리도록 씹고자 한다. 이르게 태어난 예술은 언제고 물어뜯길 목덜미와 너른 자비가 있어야 한다. 사진의 역사에 이름이 지워진 수많은 어머니들. 그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 그 이름을 외워보고 싶다. 콘스탄스 폭스 탤벗Constance Fox Talbot (1811–1890)은 종이 사진의 연구자였던 헨리 폭스 탤벗의 아내로 알려졌지만, 초기 포토제닉 드로잉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인물이자 최초로 사진을 촬영한 여성이다. 그녀가 찍었다고 인정받는 이미지는 토마스 무어의 시 구절을 찍은 사진 한 장 뿐이나, 그녀의 기록은 그녀의 사진이 남편에게 귀속되었을 가능성을 증언한다. 그녀의 일기와 편지들엔 ‘사진 작업을 열렬하게 하고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사진을 열렬하게 하기.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선언이다.
열렬히.
작년에는 사진의 어머니들의 부고가 많았다. 아버지를 거역했던 그들을 마음 속으로 깊이 기린다.
노나 파우스틴Nona Faustine (1977-2025)
박영숙 (1941-2025)
노나 파우스틴Nona Faustine, <그들은 자신들의 강간과 정복의 산물인 전리품과 제도들로 이 땅을 점령했다>, 트위드 법원청사, 뉴욕, 2013년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_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 2002년
황예지 @yezoi
사진가. 사진웹진 더미덤피이미지 편집인.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전 《마고》, 《부족한 별자리》, 《수프 같은 것: 나는 아글라야 페터라니를 찾아가기로 한다》를 열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에세이집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과 『아릿한 포옹』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