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람 — 불타는 도시들과 댄스플로어

김하람 — 불타는 도시들과 댄스플로어

웨어하우스 파티, 브루클린

언제 뜬지도 모를 해가 셀로판지 붙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 시간쯤엔 사람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낸 먼지와 열기 그리고 싸구려 포그머신만 있으면 특별한 조명 효과 없이도 비현실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나는 우리가 이 시간쯤엔 늦은 밤과는 조금 다른 결의 무언가를 나누게 된다고 느낀다.

플라이어에 적혀있던 종료 시간은 오전 열한 시였다. 여덟 시 정각에 음악이 멈췄고 우리는 이름 모르는 디제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스피커에 기대어 다음 디제이가 첫 곡을 시작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한참 동안 턴테이블이 아닌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화 소리가 멀리서부터 빠르게 잦아들더니 손전등 불빛들이 무리를 차갑게 가르며 디제이 부스 쪽으로 다가왔다. 경찰이었다. 뉴욕에 막 들어올 때쯤 보았던 ICE의 과잉 진압에 관한 뉴스들, 친구들의 걱정 어린 충고가 떠오르며 불안해졌다.


상황은 다행히 모두를 내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좁은 문으로 한 번에 빠져나가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 누구도 아쉬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몽롱하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바깥은 완전히 밝아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 쪽으로 멍하니 걸었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 창고 앞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줄을 서 있었다. 오전 아홉 시였다.


불과 1년 사이 이 지역에 클럽과 레이브 스팟들이 빠르게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이 누군가의 신고로 사라졌다. 나는 그날 밤 바로 건너편 건물에서 새로운 클럽의 조명이 달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몇 블록 남짓한 창고 단지 안에서 어떤 순간들이 금방 생겨났다가 흩어지고 있었다.

 

Stelplaats, 루벤

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택시를 불러야 했다. 브뤼셀에서 1시간 거리, 루벤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친구가 음악을 트는 날이었다.


타이어가 자갈을 밟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바람을 뚫고 투박한 건물 외벽을 더듬어 간신히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철제 구조물 위로 길게 이어진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촛불과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설치 작품 사이로 스케이트 파크, 라디오, 실크스크린 작업실, 상담실, 클럽... 다양한 팻말들이 걸려있었다. 누군가 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상기된 목소리로 지난 며칠간 이어온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Stelplaats는 직역하면 차고지다. 오래된 대학 도시인 루벤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클럽 나잇에 앞서 4일간 토크, 퍼포먼스, 커뮤니티 디너가 이어졌다고 했다. 루벤의 밤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미래의 클럽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테이블에는 아티스트, 주최자 그리고 대학생 스태프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자기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라는 한 주최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유스센터에서 음악을 시작했던 내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지하 주차장 옆 합주실, 누군가가 데려간 홍대의 공연장, 직접 만든 포스터, 오천 원짜리 지폐들을 모아 대관료를 메꿨던 날. 나도 그렇게 무언가를 어설프게 흉내 내며 이 일을 이어온 것 같다.


식사가 끝난 후, 댄스플로어 위에 익숙한 열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앳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무리 지어 다니고, 서로를 소개하고, 새로 도착한 친구를 이끌고 디제이부스 앞으로 갔다. 어수선한 분위기 사이로 들뜬 마음들이 느껴졌다. 음악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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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은 과열되어 있다. 하루 종일 들리는 사이렌 소리, 전쟁 뉴스와 숫자들, 커리어와 노후 계획, 금방 생겼다가 사라지는 공간들,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 우리는 그 안에 스피커를 놓고, 조명을 달고, 사람들을 부른다.


댄스플로어를 쉽게 낭만화할 수는 없다. 그 안에도 노동과 욕망, 모순과 불안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다. 때로는 희망이나 피난처라기보다 불타는 세계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낡은 건물, 싸구려 포그머신과 사운드시스템, 술에 취한 몸짓들, 선글라스를 쓰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어떨 때는 그 모든 것이 우습게 보이면서도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낮의 규칙에서 잠시 벗어나 아무 결과도 남기지 않는 시간이 의미를 가지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됨을 느끼고, 거울 앞이 아닌 군중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


그게 음악 때문인지, 사람들 때문인지 혹은 그 둘 사이에서 잠시 생겨나는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밤도 결국 몇시간 남짓, 끝나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사진 몇 장, 숙취, 귀에 맴도는 멜로디, 흐릿한 기억정도.


그런데 몇 장면들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김하람 @hakiimr

Hakim 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틀러 다닙니다. 클럽 Ring 의 레지던트 디제이, 기타리스트, 종종 음악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여러 도시들을 여행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