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씨발 인생
내 청바지가 누디진 드블코에서 레졸루트 714로 바뀐 것보다 강남 가로수길은 더 많이 변했다. 핏이 스키니에서 와이드로 달라지는 동안 가로수길은 텅 비었다.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은 뒷골목 격인 세로수길 템버린즈 제니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과거 쇼핑객이 가득했던 가로수길 거리는 애플스토어만 덩그러니 남았다. 공실 빌딩 유리에 반사된 가로수가 푸르게 일렁였다. 가로수길 인기 없다. 우리는 이것을 망하거나 죽었다고 한다.

2009년 가로수길 컬티즘에서 스키니 핏인 드블코(Dry Black Coated)를 샀다. 치킨 튀겨 나온 기름을 1톤 트럭에 실어 번 돈으로 처음 20만 원짜리 데님 사 입었다. 드블코는 입을수록 점점 광이 났고 무릎 뒤편에 쭈글쭈글한 곱창이 생기면서 나를 미치게 했다. 너무 좋아서. 가랑이가 몇 번이나 터져 못 입을 때까지 드블코만 찾았다. 그 뒤로 비싼 데님을 다시 산 것은 2024년 가로수길 ETC서울에서다. 714는 세미 와이드 핏이다. 유행이 스웨덴 프리미엄진에서 몇 번이나 바뀌어 일본 아메카지에 이르렀다.
내가 유행 좇는 에겐남이라고 말하긴 좀 싫은데 변명하자면 드블코나 714나 데님의 철학은 같다…… 둘 다 워싱 없는 논워싱 진이라는 것. 입는 사람이 자신만의 워싱을 만들게 한다는 것. 나는 경년변화를 느낄 수 있는 데님을 한결같이 좋아했다고 말하고 싶다. 청바지 물이 빠지는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것. 구멍 난 바지를 보면서 내 안의 뭔가가 지나갔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다─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이유는 내가 결국 가로수길 같은 놈이 되기 싫어서다. 데님은 나의 시간을 흡수하며 깊어졌지만 가로수길은 자본이 급조한 유행 속에 성장하다 허울이 되었다.

2022년 9월 가로수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강남구 신사동 507번지에는 ‘씨발 인생’이란 낙서가 있었다. A 코스닥 상장업체의 본사 외벽에 쓰인 10㎝ 크기 글자였다. 볕에 흐려졌는지, 일부러 지우려고 긁은 탓인지 낙서는 회색 콘크리트 벽을 파헤쳐놓은 듯했다. 깨끗하지 못한 벽에 굵고 동글동글한 글씨였다. 내심 순한 사람이 열이 뻗쳐 참지 못하고 새긴 낙서 같다고나 할까. 욕설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당시 내 심정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6년 차, 어떻게 이 짓거리를 평생 하지. 원래 인생이 이런 거야.


씨발과 인생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단어가 숨어있다. 그 단어들은 인디고 데님이 새하얗게 바래거나, 드블코가 714가 될 때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사건보다 더 많다. 상권이 가로수길에서 세로수길로 이동하는 이유보다 더 복잡하다. 씨발이란 욕에는 무수히 많은 감정이 담겨 있고 이를 인생에 갖다 댈 때 그 수많은 사건들은 차마 표현할 수 없어 녹아 사라지는 듯하다. 용광로 속에 빠지는 터미네이터처럼 말로 다 할 것 없다. 두 단어가 삶의 부조리와 애환, 그리고 그것을 다 표현할 힘이 없어진 상태에 꼭 알맞다.

왜 가로수길에 씨발 인생이 있는지는 낙서가 중간에 없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26년 5월 다시 같은 장소에 갔을 때 씨발 인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또렷한 글자였는데 이젠 없다. 4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기억되고 잊혀졌다. 예를 들어 씨발 (장사 망해서 죽고 싶은 내) 인생. 혹은 씨발 (비트코인 떡상해서 너무 좋은) 인생 등이 있을 텐데 우리가 삶의 모퉁이에서 이 단어를 뱉을 때는 언제나 전자에 가깝다. 안 좋은 일들은 좋은 일들을 집어삼켜 삶의 타임라인 전체를 흐린다. 불황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가로수길은 한 때 힙한 상권이었다. 한국 최고 부촌인 압구정과 맞닿아 있는 만큼 구매력 있는 계층이 쇼핑하던 곳이었다. 1970년대 강남개발로 청담동, 압구정동이 발전하면서 해당 상권에 있던 갤러리들이 가로수길로 하나둘 옮겨온 것이 시작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 브랜드가 입점하기 시작했고 건물 층수가 높지 않아 통일감을 이루는 거리는 뉴욕 소호처럼 변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F&B, 패션 업체들이 자리잡았다. 상권 발달은 맛집으로 시작해 패션, 테크로 완성된다. 2018년 1월 국내 첫 애플스토어가 가로수길에 진입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가로수길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임차인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그사이 대중의 쇼핑 감수성마저 바뀌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호 느낌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공장지대와 상업이 섞이는 인더스트리얼 또는 하이브리드 공간을 힙하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더 늘었다. 성수동 상권이 새 쇼핑 성지로 떠올랐고 강남 도산공원 역시 유동인구를 빼앗아 갔다. 가로수길 공실률은 2021년 33.1%에서 2022년 29.6%(내가 낙서를 발견했을 시점)로 떨어지는 듯하더니, 2023년(36.9%), 2024년(39.5%), 2025년(43.9%), 2026년 1분기(45.3%)로 치솟았다. 가로수길 메인 거리의 절반 가까이가 텅 빈 것이다.

가로수길 임차 시장이 씨발과 인생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안 주식 시장 역시 그러했다. 낙서가 새겨진 A업체는 팬데믹에 따른 유동성 증가로 2021년 장중 최고가 3,635원까지 치솟았지만, 2022년에는 2,630원으로 떨어졌고, 급기야 2026년 5월 1,050원으로 급락했다. 반면, 건물 공시지가는 2022년 1평(3.3㎡)당 5,194만원에서 2023년 4,940만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5,336만원으로 다시 올랐다. 미국 연준 금리 상승으로 하락했던 자산 가치가 2024년 말부터 시작된 미 연준과 한은의 금리 인하(피봇) 기조에 맞춰 다시 상승한 것이다. 강남 부동산 소유주의 자산은 우상향했지만 임차인은 버틸 수 없고 주식은 알 길이 없다.
씨발 인생은 그래서 둘 중 하나다. 자본을 투자해 가게를 차렸다가 망한 자영업자, 또는 주식에 인생 몰빵했다가 떡락한 개미. A업체 주식 샀으면 큰일이었을 것이고, 그 근처에서 장사했으면 매매 가격에 연동되는 임대료로 고통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 둘 다 할 용기가 없어 꾹 참고 회사 다니는 누군가도 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거시경제 흐름 속에서 개인이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바라고 내렸던 선택은 이처럼 무참히 외면받곤 한다. 이를 예측해서 사업 또는 투자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낙서는 세계의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 인간이 하릴없이 당하는 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씨발 인생은 거대한 자본주의 흐름 안에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래야만 하는, 혹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각오하는 외마디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생이란 그런 것이거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일들 앞에 내부의 자신을 다잡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하겠는가. 마음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에 새기고 나아가는 수밖에. 신사동 가로수길이 다시 살아나는 것보단 그 낙서를 쓴 사람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더 높다고 믿는 수밖에.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달리 모르겠다. 사라진 낙서와 달리 사람은 역경과 고난을 잊을 수 없는 법이니까.

최용준 @talkingconcrete
시(詩)와 꿀벌을 좋아한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