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김두한 이소룡

 

여름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어려운 탈출은 몇 없다. 더위는 사람을 새로운 감옥에 가둔다. 담장을 넘으면 창살이 나오고 열쇠를 훔치면 철조망이 나오는 식으로 더위는 겹겹이 쌓여 사람을 달아나지 못하도록 한다. 이제야 바람이 분다. 모든 것이 한데 멈춰 있다 여름 스스로 문을 연다. 지난해 여름도 끝없이 길었다. 그 한참 때 8월 서울 종로삼가 돈의동 쪽방촌에 갔다. 나는 탑골공원에서 종로주얼리타운으로 가로질렀다. 혼자였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종로삼가 인근 쪽방촌 지도

 

약 2평(6.6㎡)도 되지 않는 쪽방에는 노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문을 열어둔 채 안에서 건너편 열린 방을 본다. 훤한 살림살이를 지나 문지방을 타고 말이 오간다. 이곳 사는 사람이 아니면 여기 올 이유 없다. 누군가 지나면 두 눈이 그를 쫓아 움직이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책상다리하고 가랑이 위에 부채를 가만 올려둔 채 땀을 흘린다. 움직이지 않는 벽과 벽이 그대로, 여전히, 맞붙어 있다. 골목은 해가 잘 들지 않지만 아스팔트 열기는 갇혀있다. 여럿이 한곳에 있다. 


종로삼가 쪽방촌에 들어서는 벽에 적힌 낙서


종삼 돈의동 쪽방촌 초입에는 ‘김두한’, ‘이소룡’ 두 이름이 적혀 있다. 회색 벽돌 한 장마다 한 명씩. 싸움의 고수가 가로로 나란히 있다. 김두한 별명은 잇뽕(いっぽん·一本), 한 방이다. 이소룡 대표 영화 정무문의 영제는 Fist Of Fury, 분노의 주먹. 1966년 9월22일 제6대 국회 제58회 제14차 국회 본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김두한은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라고 말하며 국무위원들에게 진짜 똥을 뿌렸다. 나는 회의록 속에 담긴 김두한의 발언이 종로삼가의 낙서처럼 느껴진다. 이소룡의 아뵤 기합은 괴조음(怪鳥音)이라고 부른다. 괴상한 새의 울음. 


종로삼가 쪽방촌 골목 모습


돈의동 쪽방촌은 구한말 공터였다. 서울시 전신인 경성부는 1920년 이곳을 땔감과 숯을 거래하는 시탄시장으로 만든다. 광복 직후인 1945년부터 소규모 사창가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공창제도가 폐지되면서 사창가는 더 커진다. 손정목 ‘나비작전-종삼 소탕기’에 따르면 1966년 조선일보는 “짧은 밤이 300원, 긴 밤이 800원”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담배 한 갑이 30원이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서울 수복 때부터 이미 종로삼가에서 성매매는 이뤄졌다. 



나비작전 이후 텅 빈 종삼 골목길


종삼이 사창가에서 쪽방촌으로 바뀐 건은 1968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나비작전 때문이다. 세운상가 건설현장을 점검하다 “아저씨 놀다 가요”라며 소매를 잡아끌린 김 시장이 그 길로 곧바로 회의를 소집. 구청 정문에 ‘종로3가 홍등가 정화추진본부’ 간판을 걸고 나비작전이란 이름 하에 일대 매춘(꽃)을 목적으로 출입하는 나비(남성)를 적발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공무원들은 사창가 앞에 모여 나비들이 몰리면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사창가 골목에는 한국전력 직원을 동원해 100촉 전등을 달아 어둠 속 얼굴을 숨기지 못하도록 했다. 나비들은 달아났다. 


도심 주거취약 계층은 이웃 간 소통에 대해 62%가 긍정적으로 평가


오늘날 종삼 쪽방촌 칸칸에는 도시 빈민 500여 명이 산다. 보증금 없이 월 25만 원과 골목 술판 사이 웃음꽃이 핀다. 이곳은 각자의 항로와 유대로 끈적거린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이다. 가난의 굴레 때문만은 아니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더위 속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이 골목을 벗어나려면 김두한의 폭력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혹은 이소룡을 적어 쪽방촌에 날아드는 불행을 격파하길 바랐을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너는 김두한 해라, 나는 이소룡 할 테니. 우정의 표식 같기도 하다. 


쪽방촌 거주자는 평범한 일반인보다 이웃을 더 믿는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로 살펴본 도심 주거취약계층의 빈곤과 온기’에 따르면 도심 주거취약계층은 이웃 간 소통에 대해 62%가 긍정 평가했다. 부정 응답이 많았던 일반 집단(43.5%)과 대조를 이뤘다. 이웃에 대한 신뢰는 도심 주거취약계층의 90%가 신뢰한다고 응답해 가족에 대한 신뢰(80%)보다 높았다. 종삼 쪽방촌이 있는 돈의동 지명 유래는 의형제가 맺었던 돈독한 의리에서 비롯됐다. 

 

최용준 @talkingconcrete

시(詩)와 꿀벌을 좋아한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