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 내가 위키위키위키를 만든 까닭은

민구홍 — 내가 위키위키위키를 만든 까닭은

“요즘 위키 엔진 만들어요.” 꽤 오래전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비슷한 말을 건넸다. 사람들은 대개 책을 쓰거나, 전시를 준비하거나, 웹사이트를 만든다고 말하지 위키 엔진을 만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들 반응도 대체로 비슷했다. “오, 정말요?” 묻거나, 잠깐 빙긋 웃거나, 곧장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농담에 가까웠지만 그저 농담은 아니었다. 일찍이 위키를 좋아했고, 언젠가 내게에 최적화한 위키를 직접 만들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반복한 말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위키위키위키(WikiWikiWiki)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올해 도전할 가장 가치 있는 목표는 1년 전에는 어쩜 이걸 몰랐을까 싶은 것을 배우는 일입니다.” —케빈 켈리(Kevin Kelly), 『와이어드』(Wired) 전 편집장


텍스트 파일 기반 위키 엔진인 위키위키위키는 데이터베이스 없이, 복잡한 설정 없이, 그냥 쓸 수 있는 위키를 표방한다. 웹 서버에 파일을 업로드하기만 하면 마술, 아니 요술처럼 위키가 만들어진다. 이 정도의 간결함은 성격에 가깝다. 위키 엔진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전에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법부터 익혀야 하는 상황이 늘 마뜩잖았다.

미디어위키(MediaWiki)나 도쿠위키(DokuWiki) 등 세상에는 이미 훌륭한 위키 엔진이 적지 않다. 여기에 새로운 엔진을 하나 더하는 일은 그저 효율의 문제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였다. 여러 엔진을 하나하나 테스트해볼수록 필요한 것은 점점 적어졌다. 텍스트 파일, 마크다운, 쉽고 빠른 문서 연결. 처음부터 내가 원한 것은 이 정도였다. 레이아웃이나 타이포그래피를 조정하는 툴바나 이미지 첨부 기능은 애초에 생각도 없었다. 위키위키위키의 모든 기능은 그저 글쓰기와 연결로 수렴한다.

“어설픈 기능 열 개보다 확실한 기능 세 개.” —37시그널스(37signals)


코드를 쓰다 보면 글을 쓰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위키위키위키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큰 얼개를 잡고, 한 줄을 더하고, 한 줄을 지우고, 문장을 고치듯 조금씩 다듬었다. 형용사와 부사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빼는 게 좋다는 글쓰기의 금언처럼 무엇을 넣을지보다 무엇을 빼야 하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더 오래 걸렸다.


위키위키위키에는 RSS, Atom, JSON Feed 등 외부 구독을 위한 기능까지 포함돼 있다. 한편으로는 친절한 기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서가 위키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흔적이기도 하다. 문서를 쓰는 사람은 혼자 있어도, 문서는 대개 혼자 있기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피드가 되고, 목록이 되고, 다른 문서의 재료가 된다. 위키는 문서의 집합인 동시에 연결의 집합이다.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은 (그게 다소 엉망진창이라도) 내가 웹에서 특히 좋아하는 속성이기도 하다.

“사람과 생각이 모이는 곳에는 위키가 필요합니다.” —민구홍


그런 점에서 위키위키위키는 혼자 사용해도 좋고, 여럿이 함께 사용하면 더 좋다. 학교, 동아리, 회사, 연구실처럼 사람과 생각이 모이는 곳에는 늘 흩어진 문장과 규칙과 농담이 쌓인다. 회의가 끝나면 말은 사라지고, 파일은 폴더 속으로 숨어들고, 하이퍼링크는 대화창 아래로 가라앉는다. 위키는 추억이 될 법한 기억을 다시 불러내 한자리에 둔다. 위키는 거대한 지식 체계라기보다 사람과 생각이 머무는 작은 집에 가깝다. 따라서 위키를 사용하는 일은 여기에 방 하나를 더 만드는 일, 복도 하나를 더 잇는 일, 나아가 잊힐 뻔한 문장을 다른 문서와 연결해 다시 숨 쉬게 하는 일이다. 이 정도면 이미 충분히 실용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이름 이야기 또한 빼놓기 어렵다. ‘위키위키위키’라는 이름은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만든 최초의 위키인 ‘위키위키웹’(WikiWikiWeb)에서 마지막의 ‘웹’을 덜어내고 ‘위키’를 하나 더 얹은 결과다. 좋은 것은 적어도 세 번 이상 반복할 필요가 있다. 하와이어에서 유래한 ‘위키’(wiki)는 빠르다는 뜻을 품고 있지만, 위키위키위키를 만드는 시간은 평소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보다 세 배 느렸고, 그보다 세 배 집요했다. 그래서 위키위키위키는 내게 소프트웨어인 동시에 영원히 베타 버전인 한 편의 글과 같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자주 고쳐질 테다. 위키위키위키의 가장 위키다운 점이다.

“좋은 것은 적어도 세 번 이상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구홍

 

민구홍 @minguhong.fyi

자타공인 위키 마니아이자 위키위키위키 개발자.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15년 가까이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한 한편, 2015년부터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2016년부터 ‘새로운 질서’를 운영한다. 2026년 현재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 디렉터로 백창인과 함께 일한다.
https://minguhong.fyi

민구홍 매뉴팩처링  @minguhongmfg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을 거쳐 2026년 현재 AG 랩에 기생하는 1인 회사. 글쓰기와 웹을 컨베이어 벨트 삼아 제품을 생산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활동한다.

https://minguhongmfg.com

새로운 질서 @neworder.xyz

2016년 시작된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에서 코딩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동시에 배우는 법을 배운다.

https://neworder.xyz

위키위키위키

한 편의 글을 쓰듯 민구홍이 만든 텍스트 파일 기반 PHP 위키 엔진. 데이터베이스 없이, 복잡한 설정 없이, 그냥 쓸 수 있는. “좋은 것은 적어도 세 번 이상 반복할 필요가 있다.”
https://wikiwikiwiki.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