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현 — 오싹 도서관3 《도련님》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아직 끝이 어디쯤인지 모른 채로 살아가야 할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볼 때, 이것만큼 오싹한 일은 드물 것이다. 으레 삶과의 관계는 때로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또 언제 우리가 좋은 적이 있었냐는 듯 불화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마련인데, 관계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 부정당하고 말 때, 이제는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한 발짝조차 떼기 어려워진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어디론가 도착해야겠다는 욕망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가 시골 마을의 수학 선생이 된 것 역시 어떤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때그때 가능해 보이는 길로 접어든 결과일 뿐이다.
새로운 사람이 시골 마을에 정착하기란 쉽지가 않은 법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모두가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데 반해 새로운 사람은 그 모든,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까지 다 체득을 해야 하는 탓이다. 사사로운 일에 크게 맘 졸이지 않는 주인공이지만 그에게도 삶이 슬슬 몰랐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시골 마을에 가서도 그동안 살아온 대로 지냈다.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 전환을 하던 습관에 따라 경단 가게나 튀김 가게에 가서 맛 좋은 식사를 하였다. 숙직 담당이 된 날에는 군말 없이 숙직실에 머물되 매일 저녁 일과에 따라 중간에 온천을 다녀왔다. 그 결과 주인공이 맞이한 현실은 다음과 같다. 선생으로서의 품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경단 가게와 튀김 가게에 출입을 금지당하였고, 온천을 다녀오다 만난 선생과 분명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회의에 숙직실 이탈로 고발을 당하는가 하면, 숙직 날에는 자려고 이부자리를 펼쳤는데 그 안에서 메뚜기 떼가 잔뜩 튀어나오는 식이다.
주인공은 삶이 모르는 소리를 할 때마다 전력으로 저항한다. 곧바로 기숙사 아이들을 소집하여 메뚜기 떼를 이불에 넣어 둔 범인을 추궁하거나 두루뭉술한 말로 치장하며 다가오는 동료 선생들에게는 빈말이 일절 없는 답을 돌려주며 내쫓아 버린다. 이와 같은 대응에 통쾌한 기분이 들기보다는 클클 웃게 되었던 것은 그의 즉각적인 대꾸가 정확한 과녁을 향하지 못하고 어린아이 떼쓰듯 그저 일시적인 반응에 그쳤던 탓이다. 『도련님』은 내내 이런 식의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클클… 웃기긴 한데… 그렇게 고민 없이 즉각 버럭 소리부터 내질러 버렸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 될걸… 내가 뭐랬어….
그렇게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읽어 나가다 보면 입가에서 웃음이 거두어지고 대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읽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주인공이 해고당한 동료 ‘산미치광이’와 함께, 교감 선생이 뒤가 구린 일을 하는 현장을 덮치려고 계획을 짜는 장면부터가 그러하다. 교감 선생은 계략의 화신으로, 동료 선생의 약혼자와 바람을 피우는 비열한 인물이다. 그는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교묘한 술수를 꾸며 애꿎은 선생 둘을 학교 밖으로 내쫓는다. 계략의 화신에는 그만큼 치밀한 계략으로 맞서야 함을 그제야 깨달은 것인지 주인공은 산미치광이와 함께 8일 밤을 새워 가며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영 틀린 곳을 겨누던 과녁이 드디어 조준에 성공하는 장면이었고 여기서부터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쏘고 명중하고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마지막에 이르자 거의 눈물이 나올 뻔도 하였다. 오싹한 상황에 맞서 팔을 마구 휘두르던 사람이 마침내 정확한 곳을 가격할 때의 감격이 여기에 있었다.
정기현 @energy__bee
오싹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수많은 종류의 오싹함이 담긴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