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영 — I❤️NY…?: 미술작가의 뉴욕 생존기

오가영 — I❤️NY…?: 미술작가의 뉴욕 생존기

뉴욕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2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런저런 알바를 했다. 그중에는 아직 쭉 일하고 있는데도 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미술학원 알바였다. 제일 재밌었던 건 매일 다른 현장에 갔던 포토 어시, 그리고 가장 높은 시급을 받은 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도슨트였다. 


‘다양한’ ‘알바’를 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좁혀진다. 가장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계속해 오던 일 — 작업을 만들고 전시를 하는 일 — 이 공교롭게도 태생적으로 생계를 해결해주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언제 마주해도 늘 새롭게 당황스러운 딜레마다. 머니잡으로 꼭 미술과 관련된 일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만 뉴욕에서는 내가 가진 비자로 미술과 관련되지 않은 일은 아예 할 수 없고 그게 하나의 큰 제한으로 작용한다.


언젠가는 누군가한테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작은 뉴욕 에피소드들을 여기에 옮겨보았다.


고층빌딩 포토 어시 - 2025년 5월 

5번가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롤렉스 건물의 공사 현장을 다큐멘팅하는 벤의 촬영을 도왔다. 벤은 학교에서 만난 뉴욕에 온 지 15년 정도 된 파리지엥이다. 이런 큰 규모의 촬영을 종종 하는데, 작년에 몇 번 어시로 도와주고는 했다. 


아침 6시가 콜타임이었다. 뉴욕 중심가 한복판에서 공사 중인 마천루 꼭대기에 앉아서 찬 바람을 맞으며 작업자들의 안전모에 다닥다닥 훈장처럼 붙은 스티커들을 관찰하고, 저 아래로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사방이 구멍 뚫린 낭떠러지라서 적응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오금이 저리는 원초적인 스릴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몇 번 와본 벤이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모습은 환경에 익숙해 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신뢰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하긴, 이렇게까지 가시적이지 않더라도 죽음은 늘 도사리고 있는 거겠지. 이런 일은 시급이 얼마일까. 뉴욕이 한 땀 한 땀 지어지는 과정 — 나무에서 못을 뽑고 적은 양의 시멘트가 저 밑에서부터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조달되어 올라오고 — 하는 분주한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상념에 빠졌다. 


오후에 내려간 15층에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온 사람들이 콘크리트 표면을 천연 해면에 액체를 묻혀 두드리며 마치 파운데이션을 바르듯이 마감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 마주한 모든 장면은 정말 기이하고 신비로운 도시 동화 같았다. 꼭대기에서는 작업자들이 주로 스페인어를 써서 벤은 그분들과는 스페인어로 대화했다. 3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모든 언어를 쓰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Zehra의 포트레이트 사진 - 2024년 4월 

터키로 돌아가는 제라가 포트레이트 사진을 부탁했다. 제라와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바드 졸업 전시 오프닝을 보러 갔다가 업스테이트 티볼리의 작은 카페에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다 친구 소개로 인사하게 된 제라는 터키로 떠나면서 뉴욕에서 자기가 살던 방을 나에게 물려주고 갔다. 졸업 후 새집을 구할 것이 막막했던 나에게 구세주였다. 게다가 그 집에서 살게 된 덕분에 룸메의 고양이 알피를 만났고 고양이의 사랑이 뭔지 처음으로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제라가 바드를 졸업하고 일했던 웨스트빌리지에 위치한 IAIA, Institute of Arab and Islamic Art 바로 옆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는 Gay Street이 있다. 제라가 거기서 사진을 남기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Gay Street 바로 옆 Joe커피에서 집 얘기를 나누며 촬영을 준비하고, 그 거리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K타운 음식점 조형물 - 2024년 11월 

학부 때부터 쭉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새 에이스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회사를 나와 다시 작업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그리고 무려 뉴욕으로 출장을 와 나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주변 친구 몇 명을 불러 같이 하자고 해서 오픈을 앞둔 식당 안에서 시멘트를 개어 뉴저지에서 배달된 돌들을 쌓아서 가마솥과 우물 조형물을 만들었다. 친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즐겁게 일했지만 고되게 몸을 써야 하는 알바는 지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믹카이 워크숍 - 2026년~

독일에 있을 때부터 해온 믹카이 은 작업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가기 위해 워크숍을 시도해 보고 있다. 2025년 크리스마스에 같이 사는 친구와 워싱턴스퀘어 다이너에서 오랜 시간 앉아 저녁도 먹고 예정에 없던 디저트도 먹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계획을 나눴다. 친구는 연말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주로 믹카이 워크숍에 대해 생각했다. 


고맙게도 그때 그 친구가 엄청 부추겨줬고 어찌저찌 추진해서 2월부터 몇 번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최소한의 구색이 갖춰져야 사람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선뜻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몇 번 해보고 나니 그 생각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가장 재밌는 점은 사람마다 만드는 결과물이 전부 다르다는거다. 모양과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왁스 표면을 어떻게 마감하는지조차 다 다르다. 새삼 내가 왁스카빙에 엄청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지금은 작업실 한켠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좀 더 체계를 갖추고 개선해서 잘 운영해 보고 싶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도슨트 - 2025년~

뉴욕에 수학여행을 온 세종과학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도슨트를 할 기회가 갑자기 생겼었다. 오랜만에 시험공부하듯 역사적 사실들을 머리에 넣으려니 정말 골치가 아팠다. 빨래방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스크립트를 손에 쥐고 외웠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투어의 절반 정도는 커닝했지만,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최근에도 도슨트를 하고 있다.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준비했던 터라 이번에는 미술관에 여러 번 가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주요 소장품들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관심 있고 궁금했던 유물까지 샅샅이 공부했다. Chat GPT와 Met 공식 사이트의 내용을 대조하며 공부하니 이해가 쏙쏙 되고 너무 재밌었다. 특히 이집트관은 규모도 규모지만 4000년 전에 만들어진 별의별 조각품, 미라, 공예품 등을 관찰하는 재미가 엄청나다. 수많은 유러피안 페인팅 중에서는 마네의 1866년 작 〈Young Lady in 1866〉를 꼭 소개하는데, 독특한 드레스 색과 모델 빅토린 뫼랑의 표정이 주는 은밀함, 그리고 숨어있는 상징의 신비로움이 너무 좋다. 

도서관 associate, Art & Design 2025년 

컬럼비아대학교 티처스컬리지에 속한 고테스만도서관에서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도서관 곳곳에서 매달 바뀌는 디스플레이와 특별 전시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고 소장 컬렉션을 관리하기도 한다. 이 일의 좋은 점은 학교 도서관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 그리고 오래도록 보존된 컬렉션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사인 제니퍼는 80년대 말부터 도서관에서 근무했는데 도서관을 진심으로 아끼면서 수만가지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시는 모습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혼자 쓰는 작은 스튜디오가 있어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도서관에 갈 때는 거의 도시락을 싸가는데 도시락을 먹고 남은 점심시간에는 리버사이드공원에 간다. 바로 옆에 차도가 지나다니긴 해도 큰 나무가 많은 좋은 공원이다. 망원경을 들고 홀로 버드워칭하는 산책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새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크게 들려도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워서 나는 그냥 허드슨강 풍경이나 계절이 담긴 땅과 나무를 보면서 산책하다가 들어간다. 








나는 이런 알바 경험을 포함하여 작업을 중심에 두고 마주하는 삶의 단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가며 나 자신을 더디고도 충실하게 알아간다. 내 작업은 대개 규정되지 않는 유연함에 대해 말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벼룩시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사서 나만의 쓰임을 부여하거나, 그냥 크로스백보다는 세 가지 방식으로 멜 수 있는 가방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놀랍게도, 온갖 빈티지를 찾아다니던 나는 어디서 누가 입던 옷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영 찜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니쉬한, 딱 그 목적에 맞추어 제작된 물건의 작동 원리, 디자인의 이유에 감탄하며 할당된 용도 그대로 사용하는 물건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이해는 얼마 간에 한 번씩, 몇 번 정도 진하게 해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 쌓이며 바뀌고 변해서 시시때때로 스스로와의 캐치업이 필요하다. 요즘의 나는 조금 달라진 나 자신과 마주하고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최소한의 삶의 프레임을 재점검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생계를 고민하는 것에는 정말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뉴욕에서 일 찾기 경험 컬렉팅은 이제 충분히 한 것 같고 지겨울 때까지 하나의 일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직 더 거쳐야 하는 과정이 남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작업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며(자기 자신과 때때로 정면으로 조우하는 행운을 가지며!) N잡 뛰는 모든 사람들 화이팅! 


오가영 @kai.drinks.water

오가영(Kai Oh)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