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 권력을 갖는다는 것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만든 사람을 공격할 때,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든 사람을 공격할 때보다 덜 망설이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의무의 사슬로 유지되는데, 저열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인의 유익을 위하여 이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는데, 이는 절대로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따라서 실제로 행해지는 것을 버리고, 행해져야만 하는 당위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전하기에 앞서 파멸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 선함을 업으로 삼으려는 자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가 스스로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우고, 필요에 따라 이를 활용하거나 또 활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사악한 사람이 한 말인가 싶은 위 문장들은 모두 16세기에 저술된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등장하는 문장들이다(니콜로 마키아벨리, 최현주 옮김, 『군주론』, 페이지2북스, 각각 145, 133쪽). 마키아벨리는 저자에게 윤리적 태도를 기대하는 독자의 바람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군주는 선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선하려다 망한 군주가 얼마나 많은가” 묻는다. “사람들을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배신하는가”를 분석한다.
또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인간을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이익과 두려움에 반응하며, 기억보다 현재에 충실한 존재로 본다. 그는 인간을 반은 짐승이며 반은 인간인 존재라고 말하면서, 완전히 비하하지도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몹시 불쾌해하며 읽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었다. 권력을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던 선입견이, 나를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군주론』을 통해 권력의 기술을 배운다기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군주론』은 흔히 “권모술수의 교과서”, “냉혹한 권력자의 안내서”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읽어보면 권력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라 권력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식한 사람이 쓴 일종의 보고서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책이 쓰인 16세기 초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었다. 도시국가들은 분열된 채 서로 싸우고, 프랑스·스페인·신성로마제국 같은 외세가 이탈리아 땅을 전쟁터로 삼던 시기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 혼란 속에서 외교관으로 일했고, 공화정이 붕괴되자 고문과 추방을 당한다. 곧, 『군주론』은 권력을 손에 쥔 자의 책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 방식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퇴출당한 사람의 기록이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군주론』을 집필했다. (그러나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기억해 볼 때 책은 훨씬 더 흥미롭게 읽힌다. 그가 권력에 아첨하는 것 같기도, 비아냥대는 것 같기도 하고, 군주를 돕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민낯을 폭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 상황을 대비해 쓰인 『군주론』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활발히 읽힌다. 이 책을 어떻게 읽고 활용할지는 독자에게 달려있겠다. 한 가지 내게 확실했던 건, 읽는 동안 내 몸의 신경계가 온통 전투 모드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를 권력 게임으로 보는 순간 친절은 계산된 행동이 되고, 호의는 의도를 의심해야 하는 것이며, 갈등은 생존이 달린 승패의 문제가 되니까. 읽는 이로 하여금 공격성을 올리고, 타인을 의심하게 하고, 관계를 계산적으로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세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부수고 가드를 올리게 했다.
아, 이것이 군주의 마음이구나! 권력을 얻는 대신 마음이 지옥이 되는 것. 나는 책이 가르쳐준 것에 감탄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하미나 @heresmina
작가. 베를린에 거주하며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아무튼, 잠수』와 다수의 공저를 썼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여섯 명의 시인들로 구성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