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 쉘터와 엘리베이터
언젠가 나는 고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내전을 피해 독일로 망명 온 한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대단히 ‘리얼’했다. 가짜인 것이 죄다 빠지면 이런 상태가 되는구나. 그야말로 완벽하게 본질만 남은 존재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깊이 매혹되었고 동시에 그를 닮아갈 일이 두려웠지만, 뻔뻔함과 용기를 가지고 그에게 나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한동안 그는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오늘은 그중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에 따르면 사람 사이의 관계는 쉘터와 엘리베이터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쉘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피신처, 대피소, 보호소, 쉼터, 안식처 등을 의미한다. 바깥에 폭탄이 떨어지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돌아다닐 때, 혹은 자연재해로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을 때 우연히 쉘터를 발견하고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될 것이다. 서로를 발견한 우리는 쉘터 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는 가까이 붙어있기를 택할 것이다. 바깥을 두려워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할 것이다. 이리오세요. 여기 불이 있어요. 체온이 반가울 것이다. 모여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정보를 모으고 지혜를 나눠볼 것이다. 바깥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려오면 서로를 끌어안고 도닥이기도 할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나누기도 할 것이다.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에게서 오래 씻지 못해 악취가 좀 난다고 하더라도, 성격이 좀 까칠하다 하더라도, 그게 뭐 대순가? 그가 입은 옷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몸이 뚱뚱한지 근육질인지 신경 쓸 일이 없다. 생존 앞에서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 된다. 쉘터 바깥의 위험이 분명할 때 내 옆에 존재하는 타인, 그의 살아있음은 나에게 안전감을 주는 요소가 된다.
한편 엘리베이터 공간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꽤 단정한 모습으로 차려입었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내부에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가능한 그와 멀리 떨어져 설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반가워하며 가까이 붙어 서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약간은 경계하는 마음으로 서로 거리를 두고, 딱히 아는 체하지 않고, 각자의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목적지도 다를 것이다.

그에게서 악취가 난다면…… 조금은 불쾌해질 것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말도 걸지 않은 채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속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쾌적함은 떨어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목적지에 다다른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떠나면 마음이 더 편안해질 것이다. 혼자 그 공간을 쓰는 게 나으니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소 경계하고,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게 싫고 꺼려지며, 작은 차이도 거슬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타인의 존재는 나의 쾌적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두 공간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에게 나는 물었다.
“당신은 쉘터와 같은 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거죠? 제가 한국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엘리베이터 공간이었어요.”
그는 전쟁을 겪는 동안, 그리고 망명 이후에도 친구들과 쉘터 같은 관계를 경험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사람들에게 쉘터와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쓴다고 했다.
왜 한국에서 경험했던 대부분의 관계는 엘리베이터처럼 느껴졌을까.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는 물론이고 때로는 친구 사이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그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회가 갖는 역설이었을까. 우리를 묶어주는 공통의 위험이 없기 때문에? 이 엘리베이터 공간을 어떻게 쉘터로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의 내 고민이다. 이 배움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얻어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