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재 — 친절함 알레르기
과분하게도 친절을 베푸는 상대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짜증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우리 엄마고, 때때로 나에게 친절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짜증을 내곤 한다. 나를 대신해 걱정하거나 마음 아파할 때 난 고마워하는 대신,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못난 양키처럼 구는 것이다.
"뭔데! 내가 우스워 보이는 거냐!"
성격이 못난 것이 문제이긴 하나 그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상대의 친절함이 나의 못난 점을 부각시켜서? 그것도 일부 맞겠지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존경하는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방문해 그의 설계를 비평하는 자리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후에 그가 어렵게 털어놓은 말은 부모와 같은 보살피는 마음으로 이 건물을 설계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다정함이 창작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아, 설계와는 별개로 그의 다정함만을 꼬집어 비판하고 싶어졌다. '온정을 베푸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닌지' 지면을 통해 반문하듯 말했다.
어느 날 영어로 된 글을 읽다가 ‘paternalism’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검색해 보니 한국어로 온정주의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부모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자식이나 타인을 돌보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반대말을 통해서 더 자세한 뜻을 알게 되었다. 온정주의의 반대말은 ‘autonomy(자율성)’. 여기서 친절함에 대한 내 알레르기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상대에게 베푸는 친절과 따뜻함이 상대의 자율성을 앗아가는 경우에 발동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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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남동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석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을 때울 카페를 찾아봐야 했다. 복잡한 길거리에서 편안해 보이는 카페를 한군데 발견하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편안해 보였다는 것은 가게에서 디자이너의 속박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참 뒤에 그곳이 이전에 건축 크리틱을 위해 방문해 건축가와 대화를 나눈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이 가게 주인이 바뀌고 인테리어도 바뀌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에 이 가게를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카페의 높은 천장과 가게 앞에 놓인 화분이 주는 시원함이 이 장소가 주는 인상의 전부라고 느껴졌다. 다양한 관점이 포개진 이 장소는 결국 좋은 건물로 기억에 남게 되었는데, 이곳이 좋았던 건 건축가의 친절함과 자율성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승재 @fhhhfriends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의 공동대표. <잼실용음악학원>, <서교동콘크리트상가> 등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건축 에세이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를 푸하하하 프렌즈 멤버들과 함께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