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 조상과 시인

김승일 — 조상과 시인

나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매년 조상의 생일이나 명절에는 한국 불교식 제사를 지냈다. 한국 불교식 제사라는 것은 아마도 중국 유교식 제사를 한국 유교가 전유한 것을, 불교가 다시 전유한 형식인 것 같다. 그리고 한국 불교식 제사를 우리 가족이 다시 전유하여, 우리 가족이 지내는 제사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 가족식 제사인 것 같다. 아직도 우리는 인터넷에서 제사 지내는 법을 참고하여 제사에 올릴 음식이나 식순을 수정한다. 사실 수정도 하지 않는다. 찾아보기만 하고, 우린 그렇게 안 하니까 그냥 했던 대로 하자. 그렇게 맘대로 하는 제사. 나는 제사를 지내기 싫지만 우리 가족식 제사라는 형식은 마음에 든다. 


제사를 지내기는 싫지만 제사라는 개념은 재밌다. 추석에는 풍년을 기원하거나 감사하며 제사를 지내는 거라고 치자. 설에는 왜 차례를 지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설에 제사가 있다는 게 좋다. 내가 지내기는 싫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다 제사를 지내고, 나는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신기해하고만 싶다.


나는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다. 매일 미사를 지내는데 그것도 제사라고 할 수 있으므로, 처음엔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젠 냉담자가 되었다. 나는 내가 지내는 건 싫다. 누가 지내는 걸 보는 것도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싫다. 그냥 세상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된다. 설에도 성당에서는 제사를 지낸다. 설 특선 미사를 지내고 모여서 떡국도 먹겠지.


나는 불효자이기 때문에 엄마더러 제사 좀 지내지 말자고 한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모두 호주에 이민 가서 산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랑 나 둘이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몇십 년 동안 제사 음식은 엄마가 전부 만들었다. 이제 엄마는 나이 칠십이 넘었고, 엄마가 힘들게 제사상을 차리는 걸 보는 게 싫다. 그럼 내가 음식을 하면 될 것이다. 근데 더 좋은 방법은 제사를 아예 지내지 않는 것이다. 절에 돈을 내고 제사를 맡기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 있어 제사를 챙기는 건 뭐랄까. 암벽 등반 같은 거다. 너무 오랜 시간을 고생했고, 솔직히 그만 지내도 될 것 같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려갈 수 없다는 느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엄마를 돕지 않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 내가 많이 도우면 엄마가 그만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제사를 지내면서 좋았던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다 같이 조상 얘기를 하는 시간이 좋았다. 내가 태어난 해에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셨다. 본 적이 없지만 관련이 있는 사람 얘기를 듣는 건 재밌었다. 증조, 고조부모 얘기를 듣는 건 신기했다. 이제는 내가 들은 얘기를 내가 해줘야 한다. 하지만 내겐 자식이 없다.


한국 불교가 기복신앙이라서 그런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조상에게 기도를 하라고 했다. 다들 돈 좀 잘 벌게 해달라고 비는 것 같았다. 참고로 나는 기복신앙이 너무 싫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는 기도하는 걸 좋아한다. 내 나이 스물셋이었다. 설에 차례를 지내고 있었다. 차례상에 절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몇 초 후에 나는 내 기도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피식 웃었다. 죽은 사람에게 건강이라니?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차례상에 조상이 와서 밥을 먹고 있다고 여긴다. 죽은 사람에게 밥이라니? 만약 어떤 존재가 차례상에 와서 진짜로 앉아 있다면. 그게 진짜 우리 할머니이기는 할까?


그래서 나는 차례를 지낼 때마다 차례상에 새로 생성되는 유령이 나오는 시를 썼다. 향을 피우고 술잔을 돌리면 뿅 하고 차례상에 귀신이 생긴다. 처음엔 보는 것만 가능한 귀신이다. 젓가락으로 상을 세 번 치면 청각이 생긴다. 처음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다. 손자가 고조할머니라고 부르자 자기가 고조할머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고조할머니 건강하세요. 그렇게 말하자 귀신에게 건강이 생긴다. 그 귀신은 자기를 귀신이라고 칭하지 않으며, 죽은 사람의 건강이 무엇인지는 고조할머니 귀신도 모른다. 하지만 건강이 생겼다고는 말한다.

인도에서는 조상과 신이 천상에서 악한 존재와 전쟁을 벌인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물자를 대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 조상이나 신이 지면 세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제사를 지낸다. 나는 내 친구 최원석이 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만약 최원석이 죽는다면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싶다. 그리고 최원석이 싫어하는 음식만 천상으로 보내고 싶다. 최원석은 몸이 너무 약하고 겁도 많아서 악한 존재들과 싸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은 최원석에게 마라맛 쫀드기(최원석이 싫어할 것이 분명한)를 보내어 최원석을 빡치게 하고 싶다. 그런 시를 썼다.


지난 제사에서는 아빠에게 오징어땅콩을 보냈다. 여기에 있는 것이 거기엔 없다. 여기에 없는 것만 거기에 있다. 어쩌면 아빠는 여기서 생긴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채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징어땅콩을 준다. 이게 당신이 좋아하던 것이다. 


아빠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모신 다음부터 명절에 할머니 할아버지 성묘를 잘 가지 않게 됐다. 성묘를 가면 간소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무덤에 뿌리곤 했다. 납골당에는 술을 뿌릴 수 없어서 아쉽다. 물론 나는 제사가 싫다.

김승일 @desertislandking

시인.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항상 조금 추운 극장>, <나 우는 연기 잘하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