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재 — 신도시 계획
올해로 운영 10주년을 맞이한 신도시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신도시의 시작과 준비 과정, 그리고 초기 계획이 담긴 2015–2016년 인터뷰를 정리하였다.
1. 신도시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13년 즈음, 3년간 운영하던 ‘꽃땅’과 그 이전부터 참여했던 미술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게 되면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공간의 가능성과 협업의 재미를 알고 있었기에, 친구들과 마음껏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꽃땅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해진 윤호와 종종 이러한 구상을 나누었고, 농담처럼 시작된 계획은 현실적인 준비로 이어졌다. 1년 정도 충무로 인쇄소 일과 디자인 일을 병행하며 자금을 모았고, 그 사이 ‘우주만물’을 운영하던 윤호와 다시 의기투합해 2014년 을지로에 공간을 계약하며 본격적으로 신도시를 시작했다.

2. 왜 종로/을지로였나요?
어릴 때부터 종로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보고, 시장을 구경했다. 이후에는 청계천, 동대문, 충무로를 오가며 미술 작업 재료를 구하고 오래된 가게들을 드나들었다. 이 동네는 우리에게 거대한 학교이자 워크스테이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 서울아트시네마 근처를 기준으로 자리를 찾다가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다. 당시 월세도 저렴해 “안 되면 작업실로 쓰겠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3. 공간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특별한 컨셉 없이 시작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직접 공사를 했는데, 예산도 아낄 겸 두 달 동안 길에서 주운 것들을 자르고 붙이며 공간을 완성했다. 그 밖에 무료 나눔, 고물상, 재활용 센터를 돌며 구한 것들로 공간을 채웠다. 예를 들어 폐업하는 교회에서 얻은 장의자나 폐차를 앞둔 자동차에서 뜯은 시트 등을 해체해서 바, 벤치, 테이블을 만들었다.

4. ‘신도시’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그렇게 돌아다니던 어느 날, 마음에 드는—폐업 후 오래 방치됐던—간판을 발견했고, 현 거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떼어 왔다.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후 공연과 출판, 상영 등 신도시의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간판도 구하러 다녔다. ‘복사기’는 가져올 수 있었지만,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한 ‘영비디오클럽’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아쉽다.

5. 처음 공간은 어떻게 운영하려 했나요?
5층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4층은 작업실이라는 구상이 있었다. 바(Bar)이면서 스튜디오, 공연장, 클럽이 될 수도 있는 공간.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무언가가 연쇄적으로 파생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6. 낮 시간에는 작업실로 운영했다고 들었습니다.
초기에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술집 영업을 하지 않는 낮 시간에는 5층에서 회원제 작업 공간을 운영했다. 음료를 제공하고 음식도 팔며, 일종의 공유 오피스로 써보려는 시도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고, 이후에는 4층 공간의 월세를 분담해 다른 팀(미술, 음악, 건축 등)들과 작업실을 나눠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7. 인쇄와 출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처음 공유 작업실 장비로 중고 인쇄기를 들였는데, 그게 리소(RISO)였다. 사용하다 보니 재미있어 포스터, 책, 음반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소량이라도 직접 만드는 방식이 중요했고, 지금도 작업물에 따라 리소 외에도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인쇄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8. 공연이나 이벤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신도시 이벤트의 절반 이상은 외부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온다.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고, 분위기가 맞으면 함께 진행한다. 기준이라기보다, 우리가 지지하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신도시의 행사들은 ‘신도시가 만든 것’이라기보다 ‘신도시에서 함께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9. 독특한 술과 음식은 취향을 반영한 건가요?
장사를 시작하기 전, 집에서 혼자 담금주를 만들어 마시곤 했다. 종로의 오래된 가게에서 주인장이 메뉴에 없는 술을 한 잔씩 따라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맛도 좋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멋져 보였다. 지금은 거의 못하지만, 신도시 초반에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직접 담금주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공간의 술과 음식에는 그런 취향과 경험치가 반영되어 있다.
10. 신도시는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했나요?
핵심은 ‘자생’이었다. 다소 이상적일 수 있겠지만 생활의 기반과 작업의 방향이 동시에 유지되는 구조를 설계하면서, 이곳에서 우리가 직접 도구를 만들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작동시키고 싶었다. 어디에 기대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주변 친구들과 함께 혹은 각자 벌일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모여 음반과 책을 만들고, 공연을 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이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어디서든 무언가를 벌일 수 있는 상태를 꿈꿨다. 예를 들어 트럭에 장비를 싣고 숲이나 강가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그것이 신도시일 수 있는 상태 말이다.

이병재 @qudwoqudwo
이병재는 공간 운영자이자 미술작가/디자이너로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2009-2013)를 결성해 활동하였고 ’꽃땅‘(2010-2013) 을 운영하였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신도시‘와 ’미도파‘에서 디렉션과 프로젝트 기획, 디자인, 인쇄물 및 음반물 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