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령 ─ 거기가 어디든 서라
야노베 켄지의 퍼블릭 아트
얼마 전 고베에 갔다. 뭔가를 좇은 것은 아니라 되는대로 발을 옮겨 간사이에서 가장 큰 효고현립미술관에 닿았다. 안도 다다오는 도시의 부흥을 위해 고베에 많은 건물을 지었다. 이 미술관 역시 안도 다다오의 역작으로 푸른 사과 조형물 ‘청춘’을 보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과 옆에 서려 줄을 지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얘기하려는 것은 고베항과 완간 도로가 보이는 측에 선 한 소녀상에 관한 것이다.
야노베 켄지는 애니메이션과 특촬 영화의 에센스를 예술로 가져온다. 그의 거대한 조각 작품들은 일본에서 일어난 참상에 대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소녀: 한신대지진
오른손에 희망을 상징하는 빛나는 태양을 들고 두 다리를 꿋꿋하게 착지한 소녀의 이름은 나기사이다. 정식 작품명은 ‘Sun Siter’인데 물가를 뜻하는 애칭으로 불린다. 트위기와 피치카토 파이브를 연상시키는 레트로한 외형의 소녀는 왜 바다를 보며 서 있을까? 1995년에 일어난 한신 대지진을 기억하려 20주년인 2015년에 태어났다. 고통은 끝났고 희망만 남았으므로 활짝 열린 눈은 지진의 진원지인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Sun Child’는 ‘Sun Sister’의 피붙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부터 회복을 빌며 탄생했다. ‘No1’이 붙은 첫째는 오카모토 타로의 작품과 궤를 같이한다. 오른손에 들린 태양은 오사카 엑스포의 얼굴인 ‘태양의 탑’의 정신과 디자인을 이어받았다. 방호복을 입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지만 가슴에 표시된 방사선 수치는 0, 헬멧은 벗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해 지역인 후쿠시마역 앞에 세워진 조각은 공포심을 오히려 조장한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얼마 못 가 철거되었다.
고양이: 팬데믹
2020년으로부터 3년간 세계는 팬데믹을 겪었다. 야노베 켄지는 정체된 세상에 희망과 재미를 주고자 ‘Ship’s Cat’을 만들었다. 오카모토 타로가 오사카 엑스포에서 공개했던 태양의 탑 정도의 파급력을 떠올리며 새로운 작품과 엮었다. 역사 안에서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해 항해에 함께 올랐다. 그렇게 고양이는 전 세계로 퍼졌다. 태양의 탑은 일종의 우주선이고 그곳에 탑승한 ‘Ship’s Cat’은 함재묘이자 빅뱅을 거쳐 팝콘처럼 알알이 폭발해 생명을 퍼트리는 개체로 표현되었다. 단절의 시대에 태어난 고양이는 나카노시마미술관 앞과 긴자 식스에서 만날 수 있다.
박의령 @youryung
에디터. 먹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입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