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재 — 신도시 포스터 만들기

이병재 — 신도시 포스터 만들기

지난 10년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신도시’를 운영해 왔다. 신도시는 원래 바(Bar)를 중심으로 전시와 공연을 기획하고, 4층 작업실에서는 인쇄물과 음반을 제작해 온 공간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신도시의 운영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수익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인쇄물과 음반 제작은 점점 어려워졌고, 전시와 공연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4층 작업실 역시 예전만큼 활발하게 사용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 동안 공연 기획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매주 ‘볼룸 신도시’와 ‘음악도시’라는 이름으로 디제잉과 공연을 정기적으로 기획하고, 공간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신도시는 인력과 예산이 늘 부족한 상태였다. 공연 수익만으로 섭외, 포스터 디자인, 사운드 엔지니어링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이 과정 대부분을 직접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특히 매주 2~3장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초기의 신도시 포스터는 종이에 손으로 그리고 리소나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해 왔다. 이 방식은 신도시의 성격을 잘 드러냈지만, 시간과 노동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작업 방식은 다소 유연해졌지만, 정기적으로 많은 양의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기준과 프로세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몇 가지 규칙을 조금씩 정하게 되었다.

 


포스터 그리기에 대한 나름의 규칙들

 

1.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일회성 홍보물이 아닌 개인의 재미와 성장이 담긴 작업을 하자.

나의 개인적인 인생 목표 중 하나는 장편 만화를 완성하는 만화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습으로,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화 스타일을 따라 그려보는 방식을 포스터 작업에 적용했다. 물론 아티스트와 만화 작가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맞닿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이런 ‘필사’의 개념은 신도시 발간물 시리즈인 「따라코믹스」로도 확장된 적이 있다.)


2.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아티스트의 얼굴을 뎃생 연습하듯 그린다.

매주 디자인을 구상하기엔 늘 시간이 촉박하다. 공연할 아티스트의 성격이 드러날 법한 스타일로 무작정 얼굴을 그리다 보면, 때로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3. 얼굴 그리기가 지겨워지면, 아티스트의 상징을 찾는다.

앨범 아트워크, 뮤직비디오, 공연 영상 등을 통해 아티스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나 요소를 찾아 반영한다. 직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고, 내가 느낀 키워드를 바탕으로 리서치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미지가 정해지면, 그 에센스를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거나 더하고, 섞고, 변형한다. 그렇게 완성된 이미지를 다시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져온 아티스트 이미지 자체로 충분하다면, 추가 이미지를 요청해 조합과 배치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4. 시간이 없을 때는 ‘손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는다.

개인적으로 찍어둔 사진 중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다면 사진 위에 텍스트만 올리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아티스트 이미지나 영상 캡처를 오려 콜라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5. 그 외 다른 정기 공연 포스터는 패턴을 만든다.

매주 공연 포스터 외에도 ‘n주년 파티’나 ‘송구영신도시’처럼 매년 반복되는 공연은 연속성, 효율성, 상징성을 위해 디자인 패턴을 미리 정해두었다.
‘n주년 파티’ 포스터는 신도시의 간판이자 기본 로고를 중심으로, 검은 바탕에 빨강·파랑·초록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10주년의 경우에는 흰 바탕에 검은 테두리, 화환에 아티스트를 그린 디자인을 사용했는데, 오래전부터 ‘10년까지만 버텨보자’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축하 화환이 아닌 일종의 근조 화환 같은 이미지였다.)
‘송구영신도시’는 일출 이미지와 주황색을 기본으로 삼는다.


6. 퀄리티에 대한 아쉬움은 외부 협업으로 보완한다.

시간 부족으로 인해 컨셉이나 완성도 면에서 생기는 아쉬움은 종종 외부로부터 제안받는 프로젝트를 통해 해소하려 한다. 늘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기한에 쫓기다 보면 스스로 타협하고,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순간들이 생긴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매너리즘과 자괴감이 따라온다. 

반면, 외부 프로젝트는 약간의 비용과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 많고 그래서 나 자신과 협업 제안을 준 아티스트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7. 작업 중에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작업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신호다. 물론 내 생활은 점점 불행해질 수 있지만… 

 

이병재 @qudwoqudwo

이병재는 공간 운영자이자 미술작가/디자이너로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2009-2013)를 결성해 활동하였고 ’꽃땅‘(2010-2013) 을 운영하였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신도시‘와 ’미도파‘에서 디렉션과 프로젝트 기획, 디자인, 인쇄물 및 음반물 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