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 적벽대전 (赤壁大戰)

이창훈 — 적벽대전 (赤壁大戰)

그의 첫마디는 “이렇게 추운데 뛰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였다.

2025년 3월 어느 날, 나는 스토리로 망원 ‘강동원’에서 만나 같이 달리기 할 사람을 모집했고 대략 5명 정도가 모였다. 그때 나는 러닝에 미쳐있었다. 재미에 완전 빠져서 하루 70km를 이유 없이 뛰기도 하는, 다소 무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산을 뛰었다.

그래서 재즈와 맥주, 굴튀김을 전도하는 하루키(村上春樹)처럼 러닝을 하라고 전도하기에 바빴다. (하루키도 울트라 마라톤(Ultra Marathon)과 철인 3종(Triathlon)을 즐기는 달리기 애호가다.) 주변에 망원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달리기를 안 한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참여를 희망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초봄의 꽃샘추위를 피해 강동원 옆 코닥(Kodak) 포토 부스 사진관에 들어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이렇게 추운데 뛰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뿔테 안경에 패딩, 스판이 들어간 슬랙스까지 온통 검은 옷차림이었다. 컬러 코드 #FFCA1A 같은 샛노란 공간에 있으니 그의 #000000 착장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망원 맛집 강동원. 너무 짜서 내 입맛에는 잘 안 맞는다.


약속한 저녁 7시를 기준으로 누가 봐도 일반적인 러닝 복장이 아닌 넝마를 입은, 유비의 군사처럼 다양한 5명이 모였다 (그래픽 디자이너, 영상 감독, 스탠드업 코미디언, 성우). 그리고 그들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뛰어본 적 없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가끔 친구들과 풋살을 한 게 그들의 운동 이력 전부였다.

고민이 많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5km 완주였다. 조금이라도 뛰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입문자가 5km를 완주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탈자를 없앨 전략이 필요했다.

뛰는 시간을 줄이고 걷는 시간의 비율을 늘리는 것, 힘이 있는 초반에는 바람을 마주하고 힘이 빠지는 후반에는 바람을 등지고 달리는 것이었다. 적벽을 마주한 공명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의 강렬한 바람과 5km라는 거대한 벽은 조조(曹操)의 대군만큼이나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군사들을 이끌고 망원 나들목을 지나 놀이터에서 몸을 풀고 서울함공원 쪽으로 출발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잘 뛰는 방법보다 즐기는 자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말도 걸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들이 달리기의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노력했다.

 

1km, 대부분 입문 러너들은 여기서 포기하는데, 내 우려와는 다르게 그들은 잘 뛰었다. 무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작전대로 500m 걷기를 시작했다(러닝은 특히 초보자들의 부상이 많은 운동이다). 그들은 거친 숨을 내뱉었지만 눈빛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세상의 빛을 모두 거부하는 듯 검정색 옷만 입는 염세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내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고 부르는 친구였다. 실제 이름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외형이나 삶의 태도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해서 내가 붙인 별명이다.

2km. 힘든 전투 중이어서일까. 다자이 오사무와 전우(戰友)들은 서로 어색함이 조금 줄어든 모습이었다. 양화대교를 지나 반환점인 2.5km에 도착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퇴역해도 쉬지 못하고 미라가 되어 전시된 서울함

 

“생각보다 너무 잘 뛰어서 깜짝 놀랐어요! 몰래 연습한 거 아니에요?” 내가 추궁했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놀랐다. 250명 정도의 러닝 크루(안양천 홍두깨)를 운영하고, B 아웃도어 브랜드의 트레일러닝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며 초보자들을 자주 만났다.

내 질문을 다자이 오사무와 전우들은 부정하며 “여기까지가 한계다. 돌아갈 때는 걸어가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 동남풍(東南風)을 탄 공명의 불화살처럼 맹렬하게, 초봄의 추운 바람과 5km를 격파했다.

 

 

그리고 그날 너무 맹렬했던 하루를 보냈던 까닭일까. 강동원 러닝 모임은 다자이 오사무와 영상 감독만 성실히 나오다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현재는 인스타 그룹 채팅방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사람 많은 척하려고 손의 개수를 늘림


다자이 오사무는 달리기 시작 4주 만에 10km를 뛰며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고 한다.

 

살다 보면 밖에서 제2의 다자이 오사무들을 만나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 류 사람들 특징은 아래와 같다. 

- 호남형 외모 
- 다리가 얇음 
- 식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 
- 염세적이며 예민한 타입
-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싫어함 
- 망원, 성수, 이태원 근처에 거주

위 특징만 보면 불굴의 에겐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태양인 이제마의 사상체질(四象體質)에 따르면 소양인(少陽人)에 속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그들이 러닝을 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1)키빼몸, (2)고정비, (3)부동산, (4)맞춤 운동법—에 대해서 말하면 좋을 듯하다.


재력은 태양인, 외모는 소양인이 되고 싶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