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2025년 9월 27일, 이태원 케이크샵 13주년 파티에서.


보광동에서 망원동으로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간다. 근무지 근처로 거주지를 옮기고 삶의 질이 상승했지만, 단 하나 아쉬운 것은 마실 가듯 산책 가듯 운동 가듯 했던 이태원의 클러빙 환경으로부터 거리가 생겼다는 점. 물론 모데시와 벌트까지 조용히 걸어가서 놀 수 있지만 이태원만큼의 랜덤한 즐거움이 줄었기 때문에 아쉬워질 때가 있다. 그날그날 마음 따라 컨디션 따라 BGM의 장르를 선택해서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이 그리워졌다. 특히나 잠이 오지 않는 주말 밤에는 더더욱 그렇다. 


2013년부터 10년 동안 이태원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주말의 밤을 주변 길거리에서 보냈는지 설명하는 건 언제나 새삼스럽다. 그 시절의 나는 영기획이라는 전자음악 인디 레이블의 하박국을 알게 되었고, 가끔 일을 돕게 된 계기로 영기획 비공식 여직원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며 전자음악/댄스뮤직 씬의 사람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의 전자음악 공연은 대부분 상수의 무대륙 지하에서, 가끔 한 잔의 룰루랄라에서 열렸고, 뒷풀이 종착지는 케이크샵이었다. 


처음 알게 된 13년의 케이크샵은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신생 클럽으로 테크노와 하우스 외의 장르를 취급한 유일한 댄스 클럽이었다. 퓨쳐 베이스와 비트 뮤직이라는 장르가 막 떠오르고 있었고 힙합과 보그, 각종 장르가 섞이며 Pute Deluxe, Deadend, 360 Sounds가 주기적으로 파티를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해외의 저명한 DJ와 음악 프로듀서를 매주 매달 부킹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래 이 사람이 또 언제 오겠다고... 어떤 음악을 트는지 봐야지.’ 또는 관심있는 로컬의 음악가가, 영기획을 통해서 알게된 사람이 파티를 한다고 하면 ‘뭐.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인데’ 하며,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이 양쪽 손목에 케이크샵 도장을 찍어댔다. 그렇게 케이크샵 npc가 된 지 13년이 되었고 어떻게든 매 주말 어떤 핑계를 삼아 케이크샵에 갔었는데 지금은 달에 두세 번 가면 많이 가는 것 같다.


케이크샵만 이야기해도 저 정도지만 그 시절 강북의 클러빙을 책임지던 이태원 거리의 클럽을 추억하자면 더욱 할 말이 많아진다. 해밀턴 지하의 클럽 비원BOne이나 베뉴Venue로 하우스를 들으러 가고, 가끔 아울 라운지Owl Lounge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를, 고품격 테크노의 근본을 알게 해 준 미스틱Mystik이나 그 뒤를 이어 생긴 테크노 클럽 후발주자인 파우스트Faust, 그 윗층의 트리피Trippy에서 아침 해를 맞을 때까지 춤을 추던 날도 있었다. 가끔은 새벽 4시 이후 골드바Gold Bar에 가서 이태원역 앞이 얼마나 엉망인지 보기도, 가끔 게이 친구와 동행 중일 땐 펄스Purse나 그레이Gray에도 갈 수 있었다. 클럽 소프Soap와 스커트SKRT가 생기며 해외 디제이 부킹도 더욱 많아졌다. 아무런 약속이 없다고 해도, 피스틸Pistil에 가면 자정 전까지 아는 사람 하나 둘씩 한 무리로 모여서는 함께 술 한잔을 시작으로 클럽 여기저기 메뚜기 뛰다 혼자 베톤부르로 들어가며 마무리로 낯선 애프터 파티까지, 모든 클러빙이 전생에서 누린 사치처럼 느껴진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각자도생 자가격리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화업계는 대공황 상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전염병 사태를 막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음악을 포함한 공연 업계와 내가 사랑한 클럽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작용을 통해서 오히려 바이닐 매체의 유행이 온 덕분에 생계를 지킬 수 있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지만 뜻이 통하는 친구와 온라인 공연도 만들거나 생방송 디제잉에도 주기적으로 출연하며 클러빙을 대체하고 음악업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2022년은 잊을 수 없다. 거리두기가 해제되기 전 홍대에서 하루 진행했던 1월의 10회 서울레코드페어는 추웠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 예측을 벗어난 관람 인원수와 관객의 열기로 인해서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코로나 발생자가 없으면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고, 11월 첫 주의 11회 서울 레코드페어를 통해 전화위복하리라 다짐하며 문화역서울284에서의 개최 준비를 하고 있었다. 11회 페어가 개최되기 1주일 전은 할로윈 주간이었다. 엔데믹을 선언한 이후, 이태원은 굉장히 들뜬 주말을 맞이했다.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하고 자정 가까이 귀가했던 28일 금요일 밤은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 파출소 앞을 지나가는 가족을 보며 옆 건물에서의 파티를 지나쳤다. 


29일 토요일은 모데시에 주목하는 베트남 파티 크루가 온다기에 언제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10시에 집을 나섰다. 보광초등학교를 등에 지고 나가는 길목부터 차량이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이태원역까지 걸어가는데 20분이, 3번 출구에서 지하철을 타는 순간까지 20분이 걸렸다. 지하철 안에서 인산인해의 이태원역과 해밀턴 호텔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사람 많으니 오지 마’라는 트윗을 쓴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받은 각종 재난 문자와 잔인한 소식들과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메세지에 술도 맛이 없었고 취할 수도 없었다. 


다시 6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두근거림과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바라본 황망한 해밀턴 호텔의 광경은 어제와 같이 생생해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30일 일요일 아침 서울시에서 축제를 연기하거나 취소하기를 권유받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없던 사정으로 공문에서 허락하는 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홍보와 예정된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판매사들의 참여로만 11회 페어를 마무리했다. 어떻게 해냈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안전사고가 없었으니 성공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태원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싶게 밤의 거리에 다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주말에 6호선 막차를 타고 이태원에 내리면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에 국적무관남녀퀴어노소 북적인다. 약속에 늦을세라 계단을 성큼 올라가고 개찰구부터 출구까지가 만남의 광장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벌써 3년의 시간을 마주하며 여전히 이태원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해밀턴 호텔이고 그 뒷 골목과 건넛 골목, 이태원과 한남동 입구에 많은 클럽이 영업하고 있다. 그저 나는 이곳에, 주말마다 음악이 흐르고 술 냄새가 나며 시끄러운 구역이 영원히 있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살던 한남3구역 보광동의 집은 이제 더는 갈 수 없고 곧 무너질 것이다. 새로운 주거 구역에 고급 주택단지가 생기면 이슬람사원과 호모힐과 후커힐은 어떻게 될까. 이태원 참사는 모두 잊혀지게 될까? 언젠가 이태원 살인사건의 영화화처럼 재현하는 창작물이 나오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케이크샵이 있는 이태원 입구의 광장에 앉아 붉은색의 간판을 바라보며 이태원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새로운 사람에게 도라에몽마냥 랜덤으로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곧 이태원의 다른 골목, 다른 클럽, 다른 파티에 가서 다른 음악을 듣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데킬라를 마실 것이다. 비가 내리고 추워지는 무렵, 곧 다가올 성수에서의 14회 서울레코드페어가 별다른 클레임이나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내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홍대의 사람들도 이태원의 사람들도 압구정의 사람들도 지금을 만들어 준 많은 밤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이 좋다. 곧 할로윈이 다가온다. 언젠가 우리가 무사히 마주친다면 각자의 도시 전설을 꺼내어 서울의 밤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란다.

 

조한나 @chomanna

서울레코드페어 사무국장. “음악! 난 네가 참 좋아.. 근데! 니가 너무 싫어.. 하지만! 널 사랑해.. 그러나! 널 미워해.. However! 널 알고 싶어.. But! 널 모르겠어.. Nevertheless!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진짜 내 마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