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좋아하다, 5000만 대머리나 돼라.

공짜 좋아하다, 5000만 대머리나 돼라.

사실 한동안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 것은, 세상에 던지고 싶은 생각들이나 관심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고민을 반추하는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호흡의 퀘스트일 것이며, 이를 해결한다 하여도 현실적인 보상이 없을 것을 알기에 보물상자를 열어보지 못했었다. 그러는 동안 가장 자주 받았던 프롬프트는 이러하다.


"다수결은 항상 JOAT같다" 



다수결이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책임자가 없어져서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 되지만, 이 자유가 2020년대에 들어서서는 결국 방종의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


'옳고 그름은 없다'라는 전제로 모든 사회적 논제가 다루어지니까, 중심을 잡아줄 명제가 모두 파괴되어 모든 사견들이 둥둥 떠다니고, 이의 우선순위를 나눠 줄 판단자의 권위가 사라져 버려서 결국 하향 평준화에 돌입한 듯하다.


전문성이 엘리트주의 혹은 일부의 스노비즘으로만 인식되고 있어, 로고스는 파괴된 채 파토스만 남은 시대를 맞이한 것 같다.


이 흐름을 한번 사이버펑크의 관점으로 바라보자. 본디 사이버펑크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장르였는데, 정작 지금 현실에서는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 되어버려서 거부할 대상조차 애매해진 상태가 된 거라고도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상황이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움직임이 생기지 않으니까. 물론 시작은 비판점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대두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이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려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를 적어도 자신에게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렉터라는 단어 역시 다수결로 인하여 사전적 정의가 파괴되었다. 사실 디렉터라는 것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선장 역할일 뿐이다. 동시대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솔루션을 마련하며, 이후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디렉터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단순히 유행하는 코드, 다수에게 채택받은 코드를 스캔 후 복사하여 출력하는 프린터의 역할만 찾는 것 같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디렉터는 결국 OS(운영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20년대에는 모두 하드웨어만 찾고 있다. 하드웨어 인간들이 자신을 디렉터라고 명명하며, 이를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귀해졌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높은 인기를 누리지만, 재능 있는 하드웨어형 스타들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반면, 이들을 명확한 기준으로 가려내고 우열을 판단하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선장 역할의 심사위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너도나도 특별하고 모두가 디렉터를 자칭하는 시대이다 보니, 사전적 정의의 진짜 디렉터는 현대 사회의 멸종위기종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안적 솔루션이 생길까? 지난해 들어 처음으로 든 회의적인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럼에도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사회 속에 섞여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현재적일 뿐인 솔루션들을 듣다 보니, 과연 다시 OS 중심의 사회 발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성장해온 국가인 만큼, 한국 사회는 이미 검증된 정량적 지표와 즉각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그 결과 디자인은 주로 매출을 발생시키는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이공계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공학 중심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반면 철학, 수학, 물리학과 같이 결과 이전의 질문과 탐구를 다루는 순수 학문적 접근은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아웃컴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백엔드에 포지셔닝된다.


이들은 시스템의 선행 조건으로 호출되지만 주연으로 호명되지는 않는다.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순수 학문 전공자는 백수 지망생ㅋㅋㅋㅋㅋ” 같은 말이 농담처럼 유통되는데, 말투만 가볍지 의미는 꽤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이 중요성이 완전히 부정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과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더 단단한 기반이 되는 것은 결국 순수한 질문과 탐구에서 출발한 사고 체계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70% 이상을 유럽에서 생활하며 교육을 받은 경험은, 이러한 구조를 한국 내부의 특성이라기보다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형태나 결과 이전에 창작자의 관점과 편집의 방식, 그리고 그것이 특정 시공간과 만났을 때 어떤 담론을 생성하는지가 교육과 실천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이 한국에서는 종종 여유로운 취향이나 개인적 유희로 해석되곤 하는데, 이 역시 개인의 성향보다는 즉각적인 아웃컴을 우선시해 온 구조적 환경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Amusing Ourselves to death' by Neil Postman Comics by Stuart McMillen


내가 느끼기에 '의미'라는 것이 가장 '하이엔드 럭셔리'인 것 같다. 이는 내향 직관이 발달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개발되고 유통되기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에 정품 인증 워터마크가 붙지 않는 현실이 문제의 시작인 듯하다.


히토 슈타이얼의 말처럼, 더 이상 원본이 중요해지지 않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어 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히토 슈타이얼의 주장에 공감했던 부분은 '빈곤한 이미지'라는 표현이었는데, 원본보다 해상도가 떨어진 채 계속적으로 유통되는 해적판의 이미지는 결국 빈부격차를 표현한 것과 동일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원본이나 그 출처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모든 전시나 행사의 성공이나 실적 여부는 제작자의 참여가 결정한다는 점도 공감하였다. 소재(재료)로서의 유통이 아닌, 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점의 생산과 유통이 전혀 안 되고 있는 현대 사회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신선한 야채(정보)가 발견되면 다들 그대로 야채가게(밈 계정/에디터)를 차려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러 야채가게를 통해 야채에 노출되고 손을 대기 시작하며, 이로 인하여 그 야채는 발견되자마자 단기간에 신선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니, 현 인류 모든 야채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시대인 것 같다. 마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2020년대의 예언서가 된 듯.





'의미'의 생산이 어려운 이유는 아마 시차에 있을 것이다. 단순히 야채를 유통하는 야채가게는 신속함이 중요한 유통업의 형태인 반면, 의미를 요리해야 하는 야채 요리 전문가는 많은 공정을 거쳐 음식을 제공하는 형태일 것이다. 이는 시간 효율적이지 못하기에, 발전의 구심점인 전문성이 파괴된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이제는 나도 요리사"같은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고, 결국 프로 요리사의 길을 걷는 사람은 비효율적인 군상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야채를 활용한 밀키트 사업처럼, 물리적 요리(육체노동)가 아닌 레시피 개발 및 유통(정신노동)의 형태로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간 효율적이면서도, 생산자가 지닌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아웃컴이 상이할 수 있는 정량적 판단 기준을 마련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은 원본을 지켜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가 증식하다 보니, 모든 것을 결과적 평등의 관점으로 채점하게 된다는 점이다. 레시피 개발이라는 업무 역시 자격 과잉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이로 인하여 나는 10년 후를 목표로 변리사로서의 삶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고연봉인 데다 명예로운 업이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원본을 지킬 수 있는 세계를 위한 포지셔닝은 변리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현재의 나로서는 너무나도 나약하여 매번 세상에 삐지기만 하는데, 이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질적 성장을 하고 싶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래의 5가지 궤도에서의 솔루션이 있을 듯하다.


1. 정보의 질과 출처에 대한 규명 및 신뢰 시스템 구축
2. 문화적 자각과 교육
3. 커뮤니티 중심의 협력과 창의적 리더십
4. 제도적인 변화와 혁신
5. 사회적 책임의식 변화




하지만 실제 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은, 이 모든 솔루션이 결국 인간의 선의에 기대어 '바람'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힘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정품(원본)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는 힘이 실리게 되니, 과연 사람들이 원본 보존의 환경 조성을 원하기나 할까?

이는 결국 처음에 얘기했던 다수결이 문제인 이유와도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결정권을 주게 된다면, 이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는 라이트 유저의 입장에서는 그저 간편하게 야채(정보)를 시식해 볼 가게만 무한 증식하게 될 것 같달까? 시식 코너의 국가 대한민국답게 결국 무료의 가치가 0(無)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세상에 또 삐져버린 오늘, 마지막 한마디 남긴다.



공짜 좋아하다, 5000만 대머리나 돼라.

 

송태용 @wwwcy4nwww

창작을 ‘제도’가 아닌 ‘게임’으로 바라보는 기획자. 내러티브를 입힌 공간과 제품, 먹는 전시와 입는 언어를 만들어왔고, 예술과 기술 사이의 비가역적인 혼합을 탐구한다.

RPG 코스튬샵 KIZIP, 글로벌 아트 커뮤니티 갤러리 워터마크, 'Edible Idea'라는 슬로건으로 운영중인 브레드 읍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