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 당신에게도 일어나는 일

정글 ─ 당신에게도 일어나는 일

2021년 5월, 나는 다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을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자신을 부정하는 비겁함은 매일 조금씩 내 영혼을 쪼그라들게 했다. 그리고 30대가 저물 무렵,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깨달음에 호르몬 치료를 결심했고, 몽우리와 함께 내 가슴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던 미래를 처음 머릿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지금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처럼,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로 생각하지만, 트랜지션은 을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선언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세상에서 숨어버리지 않고 세상 안에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호르몬 치료는 내 몸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늘 말라깽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나는, 기대치 못한 신체 부위에 살집이 잡혀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조금씩 변하는 얼굴을 보며, 나 자신과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새로운 내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단지 나를 옥죄던 수많은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가 누구인지 탐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 행복했다. 그렇게 거울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나의 얼굴과 몸에 조금씩 노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 또한 발견하고 말았다. “노화는 언제부터 내게 찾아온 걸까?”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행위’로서의 거울 보기가 집착적으로 노화의 흔적을 찾아내며 ‘자신을 평가하는 태도’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트랜지션을 하지 않았더라도 노화를 발견하는 순간에는 당황스러웠을 것 같지만, ‘트랜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결정한 지금, 노화에 대한 공포는 전혀 상상치 못한 무게를 안겨주었다. 남성과 여성의 기준 너머 그 에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결정하는 일은 내게 즐거움이었지만,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외모 기준을 자신에게 대입하는 과정에 나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불안하게 만들어갔다. 그것은 내가 평소에 이야기해 오던 맥락과는 정반대였기에, 나 자신이 나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의 성별 문제는 헤쳐 나가면 되는 모험처럼 여겨졌지만, 노화는 나를 작아지게 했다. 자신에 대해 이렇게 느끼는 건 뭔가 잘못된 일 같다고 생각했다.

젊고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숭배하는 세상에 익숙해진 나는, 성별 트랜지션보다 나이 트랜지션에 더 큰 어려움을 발견했다. 몇 살이 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항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처럼 여겨졌다. 결국 나는 작은 시술을 통해 마음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정확히 한 달 전, 쌍꺼풀 수술을 통해 눈매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최대한 내 모습을 유지하면서 눈꺼풀의 처짐을 교정해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당부했다. 작고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내 모습이 낯설거나 사나운 인상이 되진 않을까 불안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수술한 것을 사람들이 알면 나의 나약한 내면이 들켜버릴까 봐 불안했고, ‘더 예뻐지고 싶다’는 숨겨둔 욕망을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부끄러웠다. 호르몬치료가 내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면, 쌍꺼풀 수술은 외부의 시선에 영향을 받아 내린 결정처럼 느껴졌다. 나의 선택들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성에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었는지, 마음속에서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트랜지션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외모에 대한 압박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면서 그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성의 기준에 나도 모르게 자신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여기서 명확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감정과 생각들이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이후, 나는 분명히 변했고, 성장했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선택하고, 질문하며,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트랜지션은 단지 성별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삶의 방식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혼란이기도 하다. 나는 이 모든 감정을 안고, 외모나 규범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새긴 흔적들과 함께 나답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트랜지션은 젠더, 이주, 노화 등 인생의 다양한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선택을 앞두고, 사람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트랜지션을 결정했다.’ 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떤 형태의 트랜지션이든,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결정이 당신의 삶을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정글 @jungleusedtobeadragqueen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물병자리 트랜스 여성.
현재 트랜스패런트 기획자, 인디 록밴드 'othersmayforgetyoubutnoti'의 멤버, 패션PR 등의 타이틀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