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최용준 ─ 말하는 공구리

차라리 욕해!

 

낙서를 찍고 모으는 것은 취미라고 말하긴 좀 그렇다. 취미는 일정한 시공간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낙서를 보는 게 일이라곤 할 수 없다. 현대인에게 일은 수많은 모욕을 견디는 인내다. 남의 돈 벌기 쉬운 줄 아냐. 일하면서 수없이 들었다. 돈 벌기 위해선 결국 남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데 낙서는 그냥 거기 홀로 있다. 음. 그렇다면 낙서는? 낙서는 취미도 아니고 일도 아니다. 그저 사건이다. 벌어져 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공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다면 나는 사건을 봤다. 그리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 1월 13일 13시 53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1080 신대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차라리 욕해! 영동고속도로를 받치는 두터운 콘크리트 기둥. 흰색 곡선 글씨체로 남았다. 낙서 아래 파란색 5-, 6.5. 숫자가 적혀 있다. 수심 표시 같다. 오른쪽으로는 덤프트럭 운전석이 있다. 사진에 잘린 덤프베드에선 토사를 쏟아냈을 것이다. 흙더미가 제방을 더럽혔다. 흙탕물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멀리서 가져와 여기서 쏟아내는 공사판 소리가 들린다. 나는 욕을 자주 했다. 욕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차라리 욕해! 라고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다. 


낙서가 있는 신대교 아래를 따라 걸으면 광교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2013년 11월 전면 개장한 광교호수공원은 과거 신대저수지와 원천저수지였다. 낙서 사진 속 물은 신대저수지로 흘러 들어간다. 원천저수지는 유원지로 활용되다 쇠락했지만 신대저수지는 농업용수로 쓰였다. 논밭이 줄어들자 낚시터로도 이용됐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2시 신도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광교신도시가 계획됐다. 신도시 개발에 맞춰 저수지는 호수공원으로 바뀌었다. 갇힌 물은 3만 1,000가구가 사는 신도시의 일부가 됐다. 


나는 물이 광교호수공원이 아닌 신대저수지였던 2002년 용인시 수지구에 살았다. 월드컵 열기 같은 개발계획이 수도권 남부로 뻗던 때다. 난개발 아파트 일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밭 따라 걸으면 수원시였다. 녹슨 뜬 장에 갇힌 점박이 개가 있었다. 사납게 짖었다. 두 눈알이 적갈색이었다. 저수지 가는 길 나무가 빼곡해 숲 안쪽에는 빛이 닿지 않았다. 큰 물가는 늘 조용했다. 가끔 낚시하는 사람이 물 막는 제방 위에 서 있었다. 담배 피우며 홀로 쭈그려 멍하니 있기도 했다.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어려운 초록색 물 보고 다시 걸었다. 나는 서울에서 전학 온 중학생이었다. 공부는 잘 못했다. 친구도 없었다. 


차라리 욕해!는 홀로 던져진 말이다. 절단된 말이다. 차라리는 “대비를 이루는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바람직하지 않거나, 또는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원치 않는 상태에서, 앞서 든 사실보다는 뒤에 들 사실이 상대적으로 나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뒤이을 말은 느낌표로 묶여있다. 낙서 앞뒤로 사라진 말은 저수지 일대 어딘가로 숨어들었다. 비아냥대지 말고 차라리 욕해! 울지 말고 차라리 욕해! 배고프면, 속상하면, 헤어질 거면, 외로우면 차라리…  마음속 떠오르다 가라앉는 말들.. 저수지를 지나다 보니 실제 그 아래 무엇이 가라앉았는지도 알게 됐다. 



신대저수지 토막살인 사건은 2008년이다.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3월 2일 11시 신대저수지에서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허벅지가 발견됐다. 죽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문신이었다. 지문이 모두 훼손됐기 때문이다. 우측 종아리에는 큐피트 모양과 LOVE 글씨 문신이 있었다. 화살은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하트를 꿰뚫었다. 사체는 170~176㎝ 40대 성인 남자(O형)로 추정됐다. 경찰은 신고보상금 500만 원을 내걸었지만 사체 신원을 알아내지 못했다. 미제사건에 남은 단서는 사람 피부 위에 적힌 글씨다. 


아마 저수지를 찾는 사람들은 물을 보고 욕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외로웠다면 못까지 끝내 가지 못하고 다리 밑에서 외쳤을 수도 있다. 메아리라도 듣고 싶어서. 더 더 힘이 없었다면 차라리 욕해! 하고 홀로 낙서를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저수지로 흘러드는 사람들을 알 것 같다가도 그들이 영영 그럴 순 없고 언젠가 농업용수를 뽑아내는 펌프처럼 살아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물이 논으로 흘러 들어가 흙탕물이 된다. 마음속에서 퍼 올린 것은 욕이 되거나 그만한 용기가 없다면 낙서가 된다. 낙서를 쓴 사람은 현실로 가서 차라리 욕을 했을까.



10년 뒤. 아주대 장례식장 가는 길 차라리 욕해!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2024년 2월 14일 17시 38분 차라리 욕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통학로 가로등이 ‘리’와 ‘욕’을 절묘하게 막았다. 이의초등학교 안내판이 생겼다. 즐겁고 행복한 이의초 가는 길 안내판 아래 차라리 욕해!가 더 큰 글자로 적혀 있다. 안전 울타리가 있었다. 접근 금지도 붙었다. 상현지게차 스티커는 울타리 안쪽에 있었다. 이제 공원은 완성됐다. 정해진 산책로와 가로등이 있다. 비상벨도 있다. 주변 아파트값을 올리는 공간이 됐다. 도대체 왜 이곳까지 왔는지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저수지 인간은 갈 곳을 잃었다. 


광교신도시는 지난해 12월 준공됐다. 하나의 도시가 20년 만에 다 지어졌다. 저수지를 공원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내가 논밭을 따라 걷던 때를 지나 삼십 대가 돼서야 신도시는 더 이상 신도시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욕을 한다. 입은 점점 걸어진다. 누군가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먹고 살려고 참는다. 혹은 뭔가 지키기 위해 견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저수지처럼 나를 지켜봐 준다면. 내가 두 손을 얼굴에 덮고 품에 쓰러져 눈물을 감추면 등을 천천히 쓸어주면 좋겠다. 그때 내게 들려줬음 직한 말이 콘크리트 기둥에 그대로 있었다. 

 

최용준 @talkingconcrete

시(詩)와 꿀벌을 좋아한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