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alib의 소리를 찾아서: 미디엔사운드

maalib의 소리를 찾아서: 미디엔사운드

지난 4월 오랜만에 밴드 형들을 만났다. 23년 겨울 두 번째 EP 발매 후 처음 아니었나 싶다. 시간은 너무너무너무너무넘나 빠르고 개인 앨범 발매 전에 밴드 작업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내 다짐을 수정하는 게 제일 빠르니까 밴드 작업을 먼저 하기로 했다. 


사실 최근 스튜디오를 옮기며 여러 가지 음악적2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늘었고 올해 말을 목표로 작업 중인 정규(?)앨범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마음 착한 형들은 이런 내 맘도 모르고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메가커피 아샷추를 사주셨지만, 워낙 커 다 마시지는 못했다.


두 곡짜리 12” 싱글 레코드 제작을 목표로 착수한 이번 작업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얼마큼 내가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소리에 관대할 수 있는가였다.


늘 스몰 프로덕션을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작업에 한해선 그랬다. 비교적 적은 수의 소리들을 신중히 담아내고 싶었다. 


아마 대다수의 밴드가 드럼 녹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거라고 생각한다. 스플라이스를 비롯,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얼마든지 맘에 드는 드럼 소스를 구할 수 있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인스타 광고가 The Internet 혹은 Mild high club 등의 최신 유행 사운드의 드럼 룹을 소개하지만, 도저히 간지가 나지를 않고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드러머가 있기에 적당한 마이크를 찾는 것부터가 대장정의 시작이다.


며칠간 큐오넷, 미엔사, 뮬, 소리전자 중고장터를 둘러봤고 그 중 한 놈을 골랐다. Beyerdynamic MC 740 N P48. 생소한 모델이었지만 적당히 빈티지한 생김새에 끌렸고 각종 사용기와 후기들이 적당했다. AKG C414 XLS, Royer R-121, Shure KSM137 등의 안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물론 언급된 세 가지도 각각 성격과 사용 목적이 너무 다르다.) 이번엔 왠지 잘 모르는 모델을 잘 써보고 싶었다.


판매자에게 바로 메세지를 보냈고, 주소지에 도착하니 웬 오래된 빌라에 70-80대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빌라가 오래된 게 문제가 아니고 할아버지인 게 문제 될 것도 없지만 꽤 쿨하고 깔끔했던 판매 글이나 나눴던 문자 내용에도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막연히 비슷한 연배로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난 그 빌라 안에서 세 시간 넘게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우선 집 안을 가득 채운 말도 안 되는 장비 라인업에 눈이 돌아버렸다. 난생처음 보는 Neve 5532 콘솔과 각종 Lexicon 리버브, 커뮤니티에서나 보던 전설의 장비들이 눈앞에 있으니 현실감이 사라졌다. 마음의 준비도 채 못하고 음악의 성지로 들어가 버린 나는 도박 중독자마냥 구매하러 간 마이크엔 관심도 없고 다른 장비들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곳은 1988년에 창립된 서울사운드라는 이름의 스튜디오였고 내 중고 거래 파트너인 이태경 선생님은 공간의 오너이자 엔지니어셨다. 여러 이야기 중 조용필 님의 대부분의 앨범에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심지어 몇 곡은 아내분께서 작사했다고도 하셨다.



우연하고 신기한 만남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날지 알 수 없기에 늘 싹싹함을 유지해야 한다. 막상 수학여행보다 수학여행 전날이 더 설레고 재밌던 것처럼 음악을 만드는 일도 막상 제작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 과정이 더 흥미로울 때가 많다. 


물론 이 시간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양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재미가 없으면 무언가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럴 수 있는 내 상황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maalib @maalib

360sounds 소속 프로듀서 겸 DJ, 세상의 모든 댄스 음악을 오직 바이닐로 플레이하는 크루 스트릭틀리바이닐의 1/4, 브랜드 미스치프의 음악 감독, 노들야학 연극반 보조교사, 기혼, A형, ESF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