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씨 — 명상이 잘 안 되는 사람의 명상

지아씨 — 명상이 잘 안 되는 사람의 명상

요가를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더 깊게, 더 유연하게, 더 오래 버티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몸 너머의 영역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많은 요가인들이 결국 명상에 닿는다.


나 역시 그랬다.





명상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조용한 공간에 앉아 가부좌를 튼다. 요가적인 표현으로는 파드마아사나.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허리를 곧게 세운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제 생각을 비워야 한다.


‘다리가 저린데…’

생각을 지운다.

‘수업 끝나고 뭐 먹지…’

또 지운다.

‘내일 회의 준비를…’

얼른 없애버린다.


하지만 생각은 끈질기다. 하나를 지우면 또 하나가 올라오고, 지우면 또 올라온다. 결국 머릿속은 온통 잡생각으로 가득해진다.





그때 문득 여러 선생님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생각을 안 하는 게 명상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도 명상이에요.”

그래. 나는 지금 생각을 했고, 또 그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건 나름 성공적인 명상 아닐까? 스스로를 설득해보지만 어딘가 개운하지 않다. 이게 정말 명상인가 싶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고 그냥 일상 속에서 해보자고.





나는 사실 어언 10년째 매일 아침 보이차를 마시고 있다. 

고요한 아침. 자사호를 데우고 찻잔을 헹군 뒤 뜨거운 물로 숙차를 우린다. 차향이 피어오르고 첫 잔을 마신다.

“아, 너무 맛있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 온몸으로 퍼진다. 머릿속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초점이 흐려지고 생각도 멈추는 것 같다.

‘오, 명상이 되려나 보다.’

바로 그 순간, 두 놈의 고양이들이 테이블을 점령해 털을 날리며 그루밍을 시작한다. 너무 귀여워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찻잔 위에 떠 있는 하얀 털과 검은 털들을 발견한다.

‘아. 내가 털을 마시고 있었구나…’

갑자기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테이블을 닦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털을 발견하고, 청소기를 꺼내고, 거실을 돌고, 방을 돌고, 빨래를 넣고, 시계를 보니 외출 시간이 다가온다.

명상은 또 실패다.




다음 날에는 걷기 명상을 시도했다. 

예전에 탁닉한Thich Nhat Hanh 스님의 걷기 명상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발바닥에 닿는 감각, 공기의 온도, 바람의 방향, 주변 풍경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에 머물게 된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니 내게는 산책이라는 훌륭한 루틴이 있었다. 조금의 발달장애가 있는 우리 강아지 도리는 사람이 많은 곳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산책은 늘 늦은 밤,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한다. 명상하기에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고요하다. 내 발소리와 도리의 발소리만 들린다. 아스팔트가 발바닥에 닿는 느낌. 흙길로 바뀌며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각. 오르막길에서 조금씩 가빠지는 숨. 앞서 걷는 도리의 귀여운 뒤통수. 그 순간만큼은 정말 다른 생각이 없다.

‘오, 이번엔 진짜 명상인가?’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던 사람이 소리친다.

“강아지 안 물어요?”

순간 기분이 팍 상한다.

“안 물거든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간다. 그는 나를 한 번 째려보고 지나가고, 나 역시 그의 뒤통수를 한참 노려본다. 그러다 문득 지금 밤 산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슬그머니 발걸음을 재촉한다.

명상 종료.




또 언제 내가 고요해졌더라. 

생각해보니 혼자 밥을 먹을 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요리사 요나와 함께 음식 명상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재료를 한 접시에 담고 불을 낮춘 공간에서 천천히 먹는 방식이었다. 오로지 눈보다 혀와 코에 집중하는 것.

입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맞혀보려 한다.

토마토인가.

닭고기인가.

허브 향이 도는 것 같은데.

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까지 들린다. 내가 씹는 소리, 삼키는 소리, 음식의 질감. 꽤 괜찮다.

‘이번에는 될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적적해진다. 혼자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크게 느껴진다. 괜히 쓸쓸해졌고 결국 유튜브를 켠다.

명상은 또 실패다.

 


이쯤 되면 나는 명상과는 영 인연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차를 마시다 고양이 털을 발견했을 때도, 산책하다 괜히 심기가 상했을 때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졌을 때도, 나는 잠깐씩 내 상태를 알아차렸다.

‘아, 지금 기분이 상했구나.’
‘아, 지금 외롭구나.’
‘아, 또 생각에 휩쓸리고 있구나.’

생각을 없애는 데는 늘 실패했지만, 적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는 연습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명상을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강아지와 걷고, 음식을 씹고, 그러다 가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생각보다 명상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아씨 @jeeahci

몸과 사람을 기록하는, 야릇하고 위트 있는 요가 세계 <아 요가> 매거진 편집장 및 요가 관련 컨텐츠들을 기획, 제작하고 있는 요가 수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