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밤, 충무로 ACS에서

 

ACS의 운영자 두 명이 총대를 메고 있는 퓨쳐 관광 메들리는 뽕짝 리듬을 근본으로 한 비주류 댄스음악을 취급하는 파티로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개최하고 있다. 전날의 종로 국일관에는 체크인하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박다함과 DM을 나누다 애프터 파티에서 테크노각설이 싯시로 활동하는 혜미의 사운드 시스템을 개시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내릴 문 없는 미친 파티일 테니 놀러 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미 나는 혜미가 소목장 세미로 참여한 광주 ACC의 <애호가 편지> 전시를 통해서 그 사운드 시스템을 먼저 경험할 수 있었는데, 전시 종료 후 해체하여 보관했다가 그날의 파티를 위해 별도로 설치하는 모양이었다.

 

“SEOUL!! ARE YOU TIRED??”

 

공연장에 도착하니 영다이의 전자 올갠 연주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온 4인조 그룹 ‘프론탁산PRONTAXAN’이 스테이지에 요란한 한마디와 함께 등장했다. 집에 있을 때는 멀쩡하다가, 옷을 입고 문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눈이 감기고 졸린 상태를 설명하는 독일어가 있을까. 대중교통에서 깜빡 졸아 을지로4가에서 내린 것은 조금 찔렸지만 “예스... 아이 엠... 타이어드...”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프론탁산은 DJ 둘, MC 둘로 이루어진 음악 그룹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가요 장르인 당둣Dangdut을 기초로, 더욱 빠른 bpm의 댄스뮤직 장르인 펑콧FunkyKota을 플레이한다. 당둣이라는 장르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이 힙둣Hipdut(힙합과 당둣이 섞인 장르)을 노출해 줘서 제대로 들어볼까 생각한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퀸의 ‘Bohemian Rhapsody’나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유명한 트랙의 당둣 버전 리믹스가 나오면 MC는 앞의 사람에게 마이크를 잠시 넘겨주는 노래방 타임을 가졌다. 그러다 자신들의 음악이 나오면 거기에 맞추어 랩을 하고 잊을 만하면 ‘Are you tired???’라고 물었다. 


저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공식적으로 남은 기록은 없으나, 내 앞에서만 10번 이상 말한 것 같다. 말했다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웠는데, 생각보다 빨리 본토 음악가를 통해서 해당 장르를 접하게 되었으므로 데킬라 샷 포션을 주입해서 저들의 템포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언제 또 이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파티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잘 놀다가 작고 소중한 바에서 음료나 MD를 사는 것이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다. 


박다함은 가끔 ‘늦은 체크는 눈물뿐’이라고 한다. 그가 기획하거나 참석하는 공연을 홍보할 때(최근에는 워낙 물음표를 띄우는 편이긴 하지만), 종종 쓰던 멘트로,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규모의 크고 작음과는 무관하게 지금 접할 수 있는 음악을 놓친다면 아쉬워서 후회로 슬퍼지는 마음을 몇 마디로 잘 압축한 것 같아 마음이 가는 웃긴 말이다. 공연이나 이벤트 기획은 어딘가에 있을 관객에 대한 기획자의 의무감으로 이루어지며 흑자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 마냥 웃을 수도 없지만. 


같은 적자를 겪게 되더라도 모두가 아는 대중음악가보다 앞으로 올 가능성이 적은 장르 음악가의 공연에 이 말을 더욱 절실히 적용할 수 있다. 납작한 비교를 해보자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또 맘스터치 먹으러 올 것 같지만, 아지무스Azymuth는 멤버의 건강 사정으로 공연을 취소했다. 이후 우연히 담당 프로모터를 마주쳐서 아쉽다고 전하니, ‘어쩔 수 없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언제 공연을 재개할 수 있을지는 묻지 못하고, 무사히 쾌유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지금 체크했으면 하는 상황과 심정으로 공연을 준비해도 결국 할 수 있는 건 자리를 깔고 문을 열어두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올해는 크고 많은 전공 필수 공연과 교양 필수 파티가 열린 나머지, 하반기부터는 지갑이 버티지 못했다. 대관비도 음악가의 개런티도 올랐으니 티켓값도 비싸졌다. 가고 싶은 공연 소식은 참 많았는데 수입은 한정적인 까닭에, 이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티켓 결제 금액을 기준으로 학점을 받는다면 나의 올해 전공 필수 과목 성적은 겨우 낙제를 면할 것이다. 또한 교양 필수 점수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얼마 전 다른 친구는 농담으로 체력과 열정 이슈가 아니냐며 이야기했지만, 그런 고민보다 지갑 여유가 먼저인 것 같다. 


체력과 열정, 지갑 사정으로 이루어진 바이오리듬에서는 그 조건들이 좀처럼 맞을 일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단 집을 나가기만 하면 반가운 친구와 즐거운 대화, 새로운 음악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바이오리듬이 존재한다. FOMO(Fear Of Missing Out), 뭔가를 놓치거나 제외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한한 시간과 조건 속에서 너무 많은 선택으로 피곤해진 나머지 스스로의 기준을 잃고 휘둘리며 여유가 사라진 상황이 아닐까 진단했다. 올해는 대중픽이나 정상성을 추구하고 싶었는데 난 어쩔 수 없는 안티 힙스터인가 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파티걸 10년이면 유잼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고 본능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서울의 모처에서 누군가가 직접 만든 사운드 시스템으로 놀 수 있는 기회, 취향에 맞을 수 있는 특이한 음악가를 마주칠 수 있는 우연.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있을 텐데 지겨워질 수 는 있어도 과연 지칠 수나 있을지. 그렇게 나는 “Are You Tired?????”를 머릿속에 되뇌며 명동-광화문-충정로-신촌-홍대를 길게 돌아 집 앞까지 가는 7011번 막차에서 2025년 12월의 1일을 맞이했다. 하루는 너무 길고 1년은 생각보다 짧다. 올해의 아쉬움을 달래줄 26년 새해의 첫 곡을 일찌감치 고민해야 겠다.

 

조한나 @chomanna

서울레코드페어 사무국장. “음악! 난 네가 참 좋아.. 근데! 니가 너무 싫어.. 하지만! 널 사랑해.. 그러나! 널 미워해.. However! 널 알고 싶어.. But! 널 모르겠어.. Nevertheless!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진짜 내 마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