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잠수 ─ 사라질 것들에 새기는 기록
재개발 가이드 밤 전시에 대한 소회
‘재개발 가이드 밤’은 2023년부터 조대 작가(이하 조대)와 내가 함께 기획하고 있는 독립 전시 프로그램 ‘가이드밤’의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조대는 그래피티를 기반으로 한 페인팅과 벽화를 지속해 온 작가다. 그래피티에는 ‘바밍’이라는 행위가 있다. 이는 저항성과 충동성, 그리고 존재의 과시라는 그래피티의 핵심 정서를 구현한다. 이번 ‘재개발 가이드 밤’도 바밍의 태도에서 출발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라면 이미 한남 제3구역 재정비 사업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캔버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조대는 철거가 진행 중인 재개발 구역의 여러 지점에,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한글 문장들을 눈에 띄는 자리에 이미 바밍해놓고 있었다. 그러다 비워진 집 한 채를 선택해, 내부 전체를 벽화와 바밍으로 채우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재개발 가이드 밤’이라는 전시 제목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떠올랐다. 이 충동적인 전시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제목을 우사단 일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먼저 새기기로 했다.
그 장소는 어느 교회 첨탑 아래, 족히 4미터는 되어 보이는 빌보드 같은 공간이었다. 조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위에 ‘재개발 가이드 밤’을 커다랗게, 마치 고속도로 광고판처럼 그려 넣었다.
나와 조대, 그리고 일러스트와 페인팅 작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해처리 작가, 셋이서 한남동 재개발 구역의 빈집 한 채에 들어가 각 방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큰 의미를 담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오래된 로봇 만화 속 곧 사라질 악당 로봇들을 벽마다 그려 넣었고, 조대는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문구를 방 전체에 정교하게 암호화된 서체로 빼곡히 채웠다. 해처리는 기이한 캐릭터들과 함께 ‘Withdrawal’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거실은 셋이 함께 즉흥적으로 그림과 문장들을 채워 넣었다.
리스크를 감수한 흔적은 바밍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작업의 이름을, 그 높다란 리스크 위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아주 크게 전시해 두었다. 우사단로 초입 건물들에는 철거를 준비하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철거반은 일대를 순회하며 폐자재를 정리하고 여기저기를 체크하고 있었다. 우리는 혹여나 빈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들킬까 봐 몰려다니지 않고 주위를 살핀 후 들어와야 했다. 스프레이 캔을 흔들 때도 구슬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숨죽여 그림만 그리던 순간들의 짜릿함은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리스크 지표만으로 우리 작업은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런 리스크들이 점점 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7월 1일 이후 이 일대는 폐쇄된다’는 현수막은 우리에게 오히려 강한 원동력이 됐다. 어차피 곧 사라질 공간이라면, 그 안에 무언가를 남기는 일은 더 급박하고, 더 매력적이었다. 벽째로 뜯어내지 않는 한 절대로 팔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뭔가 쿨하게 느껴졌다. 해처리 작가가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기어코 철거 인력들이 들어와 경고를 주고 나간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보다 쿨한 전시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강행하였다.
전시가 시작되고 아직 열 명이 채 안 되는 방문객들이 오고갔을 때, 많은 수의 재개발 조합원 사람들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그렇게 재개발 가이드밤 전시는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7월 1일 이후 어차피 폐쇄될 운명의 지역이었지만 우리가 기록했던 것들을 공유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온라인 페이지에서 아카이빙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아카이빙을 위해 어렵게 다시 그 공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확인했다. 우리의 벽화들 위로 덧칠된 페인트 자국들. 심지어 해처리의 작업 위에는 하얀 페인트가 부어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깔끔히 지워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건 훼손이자 응답이었다. 철거조합은 우리 이야기에 다시 이야기를 덧입혔다.
우리는 이것을 ‘또 하나의 반달리즘’이라 부르기로 했다. 제도적 질서나 개발 담론에 반해 행하던 반달리즘이었던 그래피티 문화가 다시 반달리즘으로 덧씌워지는 역설이었다. 해처리 작가의 작업 위로 흘러내린 하얀 페인트는 심지어 ‘예술’적이었다. 우리가 처음 의도했던 것, 의도치 않았던 것들이 다층적으로 쌓이며 만들어진 이야기 그 자체였다.
나잠 수 @nahzamsue
대중음악 프로듀서/엔지니어니자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보컬이다. 현재는 음악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일러스트레이터 겸 전시기획자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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