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베이커리 — 근본 없음

없음 베이커리 — 근본 없음

‘없음.’

내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의 이름이다. 시작은 빵과 와인을 파는 작은 바였고, 자리를 옮겨 베이커리로 변신했으며, 지금은 또 한 번의 이전을 준비 중이다.

베이커리 영업 종료 일주일 전쯤 가게 전면의 커다란 로고에 눈물 방울을 붙였다. 정든 공간, 정든 손님들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더 슬프게 다가왔다.

사실 처음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붙이고 싶었던 이름은 따로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 밴드의 곡명이었는데, 오픈을 앞두고 성수동에 같은 이름의 바가 먼저 생겨 버렸다. 그렇게 가게 이름 짓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궁리 끝에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신고를 했다(당시 담당 공무원은 진심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독특한 이름 때문에 무엇이 없기에 ‘없음’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때마다 적당히 웃으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하는데 사실 남편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이유가 하나 있다.

나는 ‘근본’이 없다.

나의 본업은 빵을 굽는 일이고, 종종 부업으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내가 대학에서 배운 공학과는 거의 접점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그 일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어디서 얼마나 배웠냐고 물으면 잠깐 멈칫하게 된다. 정식으로 배운 곳도, 길게 적을 수 있는 이력도, 내세울 만한 자격도 없다. 제빵도 번역도, 어딘가에 속해 배웠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근본이 없다는 건 가끔은 곤란하고, 종종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조금 과하게 일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더 오래 반복하고, 더 많이 실패하고, 더 집요하게 고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네가 해도 되는 일이 맞다”고.

빵을 굽기 시작한 뒤로 나는 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날씨와 기온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음에서는 직접 배양한 발효종을 넣어 반죽하는데, 이 친구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결과물도 좋지 않기 때문에 늘 기분을 살펴 주어야 한다.

 

근본이 없는 대신, 나는 내가 선택한 것들에 더 오래 머물려고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없음’이라는 이름도 비어 있다는 뜻보다는, 특정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근본 없이 빵을 굽고, 근본 없이 문장을 옮긴다. 잘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계속하고 있다. ‘없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이태훈 님)이 우연히도 와인바 근처에 살았다. 첫 손님으로 찾아온 그는 금세 단골이 되었고, 라이브 공연도 몇 차례 선보였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뜻밖에 '없음'이라는 헌정곡까지 선물해 주었다. 와인바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 중 하나였다.


없음 베이커리 @bakery.upsm

편집자로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빵 굽는 와인바를 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내가 구운 빵을 좋아해 줘서 와인바를 접고 베이커리를 오픈한 지 만 3년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