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선 — 타이포그래피라는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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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사프디와 네이선 필더가 공동 제작하고 출연한 《더 커스(The Curse)》는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으로 민망한 상황을 극대화해 불편한 웃음을 다루는 필더와, 피부에 닿을 것 같은 극적인 방식으로 불안감을 연출하는 사프디가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더 커스》의 주인공 아셔는 지역 사회를 돕는 선한 인물의 이미지를 원한다. 그는 아내 휘트니와 함께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에서 친환경 주택 보급을 주제로 한 리얼리티 쇼를 촬영하고 있다. 촬영 중 들른 주차장에서 탄산음료를 팔고 있던 어린 자매에게 다가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주머니에 있던 100달러 지폐를 건넨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자마자 ‘잔돈이 없어서 준 돈이니, 다시 돌려주면 20달러로 바꿔주겠다’며 돈을 뺏으려 한다. 황당한 표정의 어린 자매는 그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I curse you(너를 저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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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아셔가 먹으려던 파스타에서 닭고기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일을 포함해 하나둘 기괴한 일이 발생한다. 아셔는 ‘진짜 저주에 걸린 것일까’라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실제로 자매가 건 초자연적인 저주인지, 아니면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강박이 만든 피해망상인지 《더 커스》는 계속 헷갈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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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리즈를 보는 내내 나는 다른 저주에 걸린 것 같았다. 매 화가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타이틀 디자인이 에피소드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틀은 꽤 불편하게 생겼다. ‘푸투라(Futura)’ 서체의 가로폭을 약 80% 정도로 압축시켜 만든 것처럼 생겼는데, S의 안쪽 곡선은 획의 두께에 밀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자간은 시각적으로 보정된 것이 아니라 수치적으로 동일하게 맞춰져 T와 H 사이 공간이 H와 E 사이 공간보다 넓어 보였다. 검색해보니 ‘LCT 피컨(Picon) 컨덴스드 블랙’ 서체를 사용하고 C만 새로 그려 넣은 것 같다. 앞글자만 크게 그린 형식은 타이틀 디자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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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점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사실 이 저주는 오래 되었다. 영화를 볼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심지어는 음악을 들을 때도 온갖 글자의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스포티파이에서 ‘스포티파이 믹스(Spotify Mix)’라는 다양한 글자폭을 가진 영문 전용서체를 열심히 만들어 놓고 국문은 굳이 좁은 글자폭의 폰트를 선택했는지 궁금해하고, 전자책을 읽을 때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체와 글자 크기, 행간을 계속 바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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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착하고 있는 이 타이포그래피라는 분야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쓸데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생명을 구할 수도 없고, 먹을 것을 제공해 주지도 않고, 몸 눕힐 곳을 마련해 주지도 않는 글자들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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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발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즐거움도 없다. 2018년에 보러 갔던 《커피 사회》 전시의 포스터에 사용된 폰트가 우디 앨런이 오프닝 시퀀스에 즐겨 사용하는 ‘윈저(Windsor)’라는 걸 발견할 때나, 1995년에 등장했던 브랜드 292513=storm의 라벨을 보았을 때, 조금 과장을 보태면 내 모든 걸 저 글자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럴 수는 없지만….)
옛날 브랜드를 다시 살려 재런칭하는 패션계의 유행에 따라 2021년에 292513=storm이 Storm London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로고를 버리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설픈 로고와 함께 돌아왔을 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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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커스》로 돌아와서, 《더 커스》의 타이틀 디자인은 나쁠 것도 없지만 아쉬웠다. 이 시리즈가 보여준 전례 없는 이야기와 비교하면 형태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빈약해 보이는빨간 로고는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소용돌이치는 모션과 함께 타이틀이 사라지며 내용이 시작되는데, 차라리 그 로고가 영원히 그 소용돌이로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타이틀 디자인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 매일 집착하고 있는 건 역시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다. 모두에게 이 저주를 나누며,
“I curse you with typography.”
유현선 @sun.you.kr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워크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책, 영화, 노래에서 읽거나 들은 문장에 해석을 더한 사물을 제안하는 브랜드 카우프만(Kaufman)을 운영한다. 옮긴 책으로 『뉴욕 스리프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