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조한나 — 음악경험 일기

26년 2월 모일, 마포구에서

한대음과 한대음

 

2025 RECAP

 

고백한다. 2025년에는 비교적 로컬 음악가의 발매 음반을 많이 듣지 않았다.

 

25년의 리캡을 다시 보니 내 청취 범위는 넓고 얕아 보인다. 국내 발매작을 꾸준히 체크함과 동시에 동남아와 중화권의 음악가를 디깅했고, 영어권 팝과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 힙합도 부지런히 들었다. 90-00년도의 일본 음악을 다시 꺼내 들었으며, 00년대부터 영향을 받아 온 인디/댄스/일렉트로닉 장르와 현재 큰 흐름을 이끌고 있는 여성/퀴어 음악가의 발매작을 주로 들었다. 국내 발매작은 케이팝과 힙합, 전자음악 장르를 많이 찾아 들었다.


음악을 듣다가 이야깃거리가 생각나면 트위터에 몇 자 써서 올리곤 하는데, 이게 내가 남기고 있는 기록이다. 타래를 만들어 북마크 해 두거나, 가끔 IG 스토리에 올리기도 하고, 그 음악을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 추가하기도 하지만 비공개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만족 외의 큰 의미는 없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면 1월에는 국내/외 평론 사이트와 유튜브 관련 채널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등을결산한 기사를 읽으며 내 취향과 전문 음악 평론의 합집합을 찾아내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2월, 그래미 어워즈와 한국대중음악상으로 한 해 청취 결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한대음(한국대중음악상)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정리해 주는 1년 보고서의 역할을 한다. 한 해 동안의 스트리밍 수나 차트 성적도 중요하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는 그 뒤에 숨겨진 창작자의 음악적 맥락과 시대적 유행, 사회의 흐름까지 읽어낸다. 장르별로 담당 위원들이 모여 복합적인 잣대로 다수결 투표를 하고, 선정의 변을 작성하며 상을 주고 있다. 올해로 23회를 맞이한 이 시상식이야말로 내 취향과 업무에 가장 연관이 많은 이벤트일 것이다. 마치 복권 번호처럼 수상자를 맞추면 기분이 짜릿하다.

 

 

복권은 무슨. 그저 매년 한대음이 시상식 규모와 기획을 유지하고, 협력사가 늘어가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한대음 첫 경험은 2015년의 구로예술극장에서 시작됐다. EBS가 촬영하여 방영하던 시절, 후보에 오른 음악가 친구 옆에 앉아 시간을 때우려 시작한 트위터 현장 중계가 계기였다. 당시에는 녹화 방송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누가 상을 받았는지 사진을 찍어 글을 올리면 RT를 꽤 받았고 팔로워도 늘었다. 그렇게 관심을 받으니 매년 후보가 발표되면 선정위원에 빙의해서 누가 상을 받게 될지 예측하거나, 아쉬운 참견을 보태는 방식으로 지금도 꾸준히 애증을 표현하고 있다. 수고는 수고, 사정은 사정이지만 잘 들었거나 더 좋은 평가가 필요한 수작이 후보작에 오르지 않는 건 언제나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K-FLIP+》이 종합 부문 후보에 없다는 것.

 

 

한대음(한나의 대충 음악상)

 

서론이 길었다. 이번에는 한대음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상을 부여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매니저님의 권유로 감히 용기를 내어 상을 주게 되었다. 이름은 한나의 대충 음악상. 줄이면 또 다른 한대음이 되는 게 재미있어 혼자 피식했다. 듀프(DUPE) 컨텐츠의 느낌으로, 한국 대중음악을 대충 들었던 나조차 대충 넘어가기엔 아쉬운 음악가들을 꼽아봤다.,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있어도 전혀 손색없을 이들에게 이렇게라도 응원을 보낼 수 있어 기쁘다. 당신의 음악을 잘 들었고, 좋아한다고, 다음 음악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추신. 기념할 수 있는 트로피라도 만들어 드리고 싶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음원 저작권료와 가끔 공연장에 보러 가는 것뿐이라 미안합니다.

 

 

1회 한정, 한나의 대충 음악상(한대음)은 아래와 같이 부문을 나누어 시상합니다.

올해의 케이팝 / 신인 / 음악인 / 노래 / EP / 앨범

(EP는 수록곡 8개 또는 30분 미만의 러닝타임을 기준으로 하며, 둘 중 하나의 조건이라도 초과한다면 앨범으로 간주합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의 후보에 없는 음악가를 선정했습니다. 

제가 좋게 들었던 음악이지만, 공감이 어렵다면 당신의 의견 또한 맞습니다.

올해의 케이팝: XLOV 〈1&only〉

25년의 K-POP 시스템은 ‘K-’를 떼어내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중으로 보이고, 엑스러브는 지금 가장 앞장서서 경계를 뚫어버리는 음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Genderless, Borderless, Limitless.


 

올해의 신인: 토마토맛(tomatomat) 

상쾌하고 촉촉한, 향수 어린 트랙 세 곡만으로 섣불리 판단해도 될 만큼! 토마토맛 덕분에 앞으로의 인디 팝의 미래가 귀엽고 밝습니다. 앨범 단위의 음악을 잘 만들어 발매하면 다가올 26년의 신인상이 진짜로 현실일 수도!


 

올해의 음악인: kimj 

솔직히 2025년, 언더그라운드부터 케이팝까지 종횡무진 도발적인 작업량을 보여준 킴제이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음악 듣는 재미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올해의 노래: 더 딥(The Deep) 〈KPOP B!TCH〉

엑스러브와는 반대로, 일렉트로 기반의 인디 댄스 뮤직 장르를 케이팝 필터링을 통해서 표현한 경우라 흥미로웠습니다. 하이퍼 팝에 기조를 두고 맞춤 복각한 형광색의 디바 트랙이 나만의 클럽 클래식으로만 남는 건 아깝습니다.

 

올해의 EP: 옴(omm..) 《가가호호》 

건강한 장단과 무해한 멜로디의 코리안 얼터너티브 뮤직 수작입니다. ‘얼쑤’ 소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음악이 2025년 모던의 규격에 맞추어 담겨 있습니다.

 

올해의 음반: 우륵과 풍각쟁이들(Ureuk and the Gypsies) 《풍류》 

프리재즈나 즉흥연주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왜?’를 분석하려 들기 때문아닐까요? . 이 음악 그룹의 연주 기록물은 올해 최고의 듣는 경험을 주는 압도적인 레코드입니다.


 

또 다른 한대음, 한나의 대충 음악상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외 리스트에 없는 수많은 음악가 여러분 덕분에 25년의 음악 듣기가 즐거웠습니다.


 

선정 후기 

 

사람이 언제부터 음악을 평가하기 시작했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감히 올해의 내 좋음과 그 이유를 정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막상 정리하고 보니 내가 뭐라고… 부끄럽다. 


음악을 소개하는 리뷰나 관련 피처 기사, 대중음악 서적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쓰는 작가에게 확고한 기준이나 직업관이 없다면 쉽지 않겠구나 싶다. 음악이라는 물가에 앝게 발을 담그는 것은 쉽지만, 깊이 빠져 분석하고 기록하기에는 애정만으로는 벌써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음악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에는 여유로울 수 없는 환경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내가 있는 곳에 흐르고 들리는 순간을 마주치면 ‘아, 이유는 모르겠고 난 이 노래가 좋아.’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떤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더 크게는 음악이 어떻게 사회와 삶에 스며 대중의 인기와 공감을 얻게 된 건지—스트리밍 차트에서 실시간 1위를 하거나 장기간 리스트에 올라 있는지부터, 사회적인 집회 현장에서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까지—알기 위해 크고 작은 이유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대음의 평가는 기간 내 발표된 음악을 선정위원 각자의 음악적 경력과 기준을 가지고 설득하는 문과적 통계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참여하는 전문가가 많으니 하나로 의견을 합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선정위원 개인의 감상과 대중의 유행에는 괴리가 있고, 기준선을 어떻게 정해서 합당한 결정으로 다수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클 것이다.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치열한 논의와 설득의 장. 마지막 결과는 실물 트로피가 되어 누군가의 음악적 경력을 인정하는 증표가 된다.




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자 소감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록 부문 앨범 수상자의 표식인 티아라의 행방이나 혹시 모를 아이돌의 등장도, 한두 번은 건질 수 있는 킬링 멘트—작년의 ‘싱글은 앨범이 아닙니다.’ 같은—말을 누가 칠지 등 올해의 시상식에서도 이런저런 돌발 상황이 기대된다. 잘 정돈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감정에 북받찬 사람이든, 흔히 말하는 18번 멘트의 흐름은 이렇다.


“이 음악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음악 경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지해 준 가족과 수고해 주시는 회사 분들, 도와준 친구들,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멘트를 빌려 나도 한마디 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실 2020년에 서울레코드페어가 한대음 선정위원 특별상을 받았을 때, 코로나로 인해 시상식이 취소되어 소감을 못 한 게 조금 아쉬웠다. 아래의 소감은 하나의 행사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는 누군가에게 보낸다.

 

“매번 자리를 만들어 행사를 준비하며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행사를 잘 해냈다고 해서 앞으로의 이벤트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진행해 온 시간들에 격려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이벤트 만들 수 있도록, 판을 만들고 발표하여 기록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지해 주는 위원님들과 수고하는 사무국, 도와주는 협력사와 응원해 주는 관객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린다.”

 

막상 이야기하고 보니 무난해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위의 수상 소감 템플릿에 대한 많은 기출 변형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조한나 @chomanna

서울레코드페어 사무국장. “음악! 난 네가 참 좋아.. 근데! 니가 너무 싫어.. 하지만! 널 사랑해.. 그러나! 널 미워해.. However! 널 알고 싶어.. But! 널 모르겠어.. Nevertheless!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진짜 내 마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