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오피스 — 사내 마술사 관찰기

티슈 오피스 — 사내 마술사 관찰기

*BEE playing cards, 1892

 

그날은 언제나처럼 회사 앞 카페에서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와 조직원 A는 미래에 닥쳐올 회사의 다양한 위기와 위기 속에서도 찾아내야 하는 사업의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하다가 다시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저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원 A는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아이패드에 고개를 파묻고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업무를 볼 때에는 그 정도로 집중하는 일이 많지 않아, 저는 방금까지 우리가 나눈 회사의 미래에 대해 그가 웬일로 깊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그의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과 붉은색 트럼프 카드가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친구가 섞어도 맞출 수 있는 카드 마술 배우기“ 유튜브 영상 따위를 보며 마술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원 A는 그 이후로 때때로 새로운 마술 볼래? 하며 갑작스럽게 쇼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가 갑자기 마술 배우기에 흥미를 느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왜인지 이 초보 사내 마술사의 행보를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goodtrick.net의 Trick of The Day

 

그의 말에 따르면 마술은 크게 무대 마술과 근접 마술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중 그는 근접 마술의 일종인 카드 마술에 집중하는 마술사입니다. 주말이 지나면 한두 개 정도의 마술을 새로 연습해 오는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는 마술을 꽤 열심히 또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는 듯합니다. 첫 시도에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친구들이 올 때마다 선보여 익숙해지곤 합니다. 현재 그는 총 5개의 카드 마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규모의 군중 앞에서 공연을 펼친 이력이 있습니다.

최근 9명 앞에서 대규모(그에게는) 마술쇼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때 그의 마술쇼를 인상적으로 본 관객이 며칠 뒤 연락이 와 개인적인 행사의 마술사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비둘기 마술이 필요하다고 하여 불발되었지만, 조직원 A는 마술사로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비둘기 마술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 마술사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는 한번 조직원 A에게 마술의 매력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마술의 멋짐은 손기술이 아니라 관객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마술 기술인 Time Misdirection은 관객의 의심이 집중되는 순간을 교묘하게 조작합니다. 마술사는 Time Misdirection 기술을 사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이 바로 속임수가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실제 속임수는 관객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전 동작에서 이미 완료되는 것이지요.

 

Fig. 77-79 The Back Palm(손등에 카드 숨기기). *The Expert at the Card Table, 1902.

 

물론 손기술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카드나 동전 마술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단순한 인터페이스(카드 혹은 동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 기대를 깰 수 있습니다. 섞었다고 생각한 카드가 앞에 나와 있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그의 이런 열변에 저는 어느샌가 마술이 꽤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술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마술은 “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임. 또는 그런 술법이나 구경거리.“라고 합니다. 마법과 다르게 마술은 애초에 거짓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더라도 거짓을 능청스럽게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마술사의 참된 소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조직원 A를 통해 지켜본 바로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어느샌가 기꺼이 속아주며 즐거워하더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직원 A는 사무실 옆자리에서 Bottom Dealing(밑장빼기)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는 즐거운 하루입니다. 그럼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티슈오피스 사내 마술사의 공연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티슈오피스 성산 본점을 찾아주세요.

티슈오피스 CTO(최고기술책임자) 이승아 드림


*BEE playing cards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주로 사용하는 Bee 카드는 보통 테두리가 없는(borderless) 뒷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카드 디자인들에 비해 매우 규칙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패턴이어서, “bottom dealing(밑장 빼기)”이나 다른 여러 종류의 손기술 마술을 수행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The Expert at the Card Table』 

마술계의 수학의 정석. 다양한 마술 도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02년도 저작물로 현재 도판 저작권이 풀려있습니다.

 

티슈오피스 @tissueoffice

티슈오피스는 2019년 봄, 건축, 제품, 공학 등 각기 다른 분야에 머물러있던 조직원들이 만나 결성한 다학제적 그룹이다. 주요 매체로 게임을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사주 게임을 만들고 있다. ’Tissue Office‘는 종종 ’조직 사무소‘로 번역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