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ck — 리허설
최광일 Vocal — 들판
귀를 기울일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나는 지금 보컬 작업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어떤 사물이 닳아 없어지는 걸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발견의 기쁨.
앞으로 이 사물과 함께하게 될 날들에 대한 희망이 대부분이었지만 30세가 되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을 목도했다. 몇 년 전부터 어딜가나 같은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옷들이 점점 해지기 시작했다. 티셔츠는 목 부분부터 찢어지기 시작해 점점 중력을 못 이겨
벌어지기 시작했고, 바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은색에서 금색으로 변해갔으며,
신발은 굽이 갈려 못이 밟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리게 된 옷들을 생각하면, 주말마다 클럽에 방문했던 날들이 눈에 걸린다.
최근에는 클럽에 갈…. 여러 가지가 없어서 과거를 회상해 봤다.
좋은 클럽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야 한다.
대화하기에 이상하리만치 용이한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곳을 몇 번 가보게 됐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댄스 플로어로 들어가는 길, 문 앞에서 음악을 엿들을 때 들뜨는 마음과 조금 공격적인 마음이 교차한다. 이제부터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다. 이제는 클럽에 자주 가지 않는다.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집중한다면, 들판으로도 갈 수 있다. 춤을 추다 보면 내일 뜨는 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빠른 차를 타고 있을 수도 있고, 가보지도 않은 나라의 바닷가 근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스피커의 위치와 에어컨의 위치에 따라 좋은 자리를 얻어내는데 경쟁이 있을 수 있지만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끝날 때까지 있을 마음만 있다면, 자정 근처에서부터 그렇게 힘을 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음악이 끊기는 일을 볼 일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정적이 온다 한들, 순식간에 야유와 격려로 소리가 다시 채워지고, 환호와 함께 음악이 이어진다) 음악에 사용된 온갖 소리들을 청취할 수 있다. 리듬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절대 놓치지 않으면서, 장소를 연상케 하는 악기들에 즐거운 상상을 하며, 춤으로 흉내를 내보며 즐기면 된다.
사실 그 옷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어쨌든 소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니, 어딘가 쓸 곳이 있을 것만 같아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지금은 바느질을 배우고 나서 말이 되었다.

안정후 Bass — 1907 dub
전화 연결음을 만들어내던 기계다. 기어가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며 400Hz와 450Hz 주파수를 생성해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를 들려주고, 축에 달린 캠(cam)과 스위치가 맞물리며 직접 신호를 여닫는다. 기계이기 때문에 일정한 듯 들리는 간격도 엄밀히는 늘 조금씩 달라지고, 소리가 끊기는 지점도 늘 조금씩 달랐다. 건물의 전류 상황에 따라 미세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 기계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구리선을 타고 흘러 전화를 걸던 사람에게 전달되었고, 구리선에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다른 사람의 통화나 소음도 함께 섞여 들었다. 같은 음, 같은 리듬의 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듯하지만, 사실은 매번 다른 파장의 소리였다.
1895년에 Thaddeus Cahill은 같은 원리를 이용해 음악을 호텔, 레스토랑, 극장, 가정에 스트리밍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의 악기 텔하모니움은 유선을 통해 맨해튼과 주변 지역 5,000명의 청취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목표로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텔하모닉 홀’에 설치되었다. 연주자들은 주로 바흐, 쇼팽, 로시니와 같은 고전음악을 연주했다. 1907년에 설치된 이후 4년간 정기적인 콘서트와 방송이 이루어졌는데, 그야말로 유령들이 춤을 추는 콘서트였을 것이다.

녹음본과 믹서, 그리고 다양한 효과들을 악기처럼 사용해 음악을 들려주는 덥 dub 뮤지션들에게 혼령이 얼마나 가깝고 중요한지를 떠올려보면, Cahill의 음악회는 내게 더욱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간섭 가득한 뉴욕 전화망의 혼란 속에 전자음악이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화기에 혼 horn을 설치하여 음악을 감상했다.
녹음본을 다루는 내가 음악을 만들 때면 어딘가 어그러지고, 매번 조금씩 다르게 들리는 소리들. 피아노만큼이나 크게 들리는 피아니스트의 숨소리같은 것을 찾게 되고, 결국 방 안의 가구 같은 것들을 담아내게 되듯, 악기가 전화망과 연결되어 있는 연주자는 콘서트홀의 연주자와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화 음악회는 다른 전화 사용자가 갑작스럽게 원치않는 전자음악에 방해받는 등 혼선으로 인한 문제들이 잦게 발생하였고, 당시 금융 공황과 맞물려 사업을 운영할 만큼 충분한 가입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텔하모니움은 1912년 2월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장재민 Drum — 빈말
몇 해 전부터 크리스털 잔이나 접시들을 수집하는 취미가 생겼다. 나는 투명한 유리를 보며 안정감을 느낀다. 아주 가끔이지만 누워서 몇 분이고 유리에 조각된 문양들을 들여다본다.
그중 한 화병은 무려 20세기 중반 독일이 둘로 나뉘어 있던 시절 동독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예리하게 조각되어 날카로운 표면을 손으로 잡고 들면 묵직한 무게감에 뾰족한 조각들이 손바닥을 짓누른다. 반면 바닥에 바르게 세워두고 위에서 바라볼 때는 매끈하고 투명한 유리 벽에 새겨진 황홀한 곡선들을 볼 수 있다. 바깥에서는 날카로운 것들이 안에서는 둥근 선이 되어 만났다가 헤어지고 만났다가 헤어지며 결국은 원이 된다.
빛이 들어왔다가 만든이의 조각 속에 갇혀 버린다. 정교한 규칙으로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지만 또 모두 다르다. 나는 습관적으로 정확해지려 애쓴다. 하지만 이들을 보면서 정확함을 탐한다는 것은 오히려 정확함에서 멀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일로써 드럼 치는 것을 그만둔다면 나도 크리스털을 만들러 떠나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드럼 치는 일이 다시 재미있어 미뤄둔 생각이지만, 또 모르지. 음악만 하는 삶은 한 편으론 아주 권태로운 짓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넓은 세상을 간접적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또 아주 작은 세상에 갇혀있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꾸 딴짓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 지난주엔 머리가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또 잠잠하다. 더 말하고 싶은 게 없다.
지현우 Guitar — 산과 라디오
2020년도에 포토그래퍼 친구와 음반 작업을 위해 태백산맥을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안개에 가려진 풍력발전기가 가까워지면서 안개를 뚫고 보일 때쯤, 끊겨있던 라디오 신호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영어도 아닌 알 수 없는 언어의 외국 라디오 방송이 나왔는데, 노이즈에 파묻혀있는 경쾌한 포크 음악이었던 것 같다. 앱을 켜서 어떤 곡인지 알고 싶었으나 큰 노이즈로 인해 알아내지 못했다.
김성회 Guitar — 무제
최근에 커즈와일 k2500x 라는 건반을 하나 샀다. 나의 음악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고. 싼 가격에 매물이 올라와 좋은 가격으로 가져왔는데 내가 원하는 기능, 성향이어서 사고 나서 한동안 기분 좋게 그 물건하고 놀았음. 작업을 할 때 지루하다면 가끔 새로운 물건을 들여오는 것도 좋은 환기인 듯.
Wack @wacksomenoise
2022년 발표한 싱글을 시작으로 Tree Pose(Mo Records, 2023), slop(snailrecordings, 2025), Be Nice(snailrecordings, 2026)을 발매한 밴드 Wack은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혼종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독특한 색깔을 자아낸다.
브레이크비트에 서프 록에 가까운 기타를 얹은 첫 싱글 “Cliche”는 작년 음악 리뷰어 Derrick Gee에 의해 소개되며 국내외의 주목을 이끌었다. Wack의 음악은 Nina Simone의 재즈 블루스를 연상시키기도, 혹은 포스트펑크의 미스테리한 미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