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 두쫀쿠는 〈슬램덩크〉다
큰일이다.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 유행이 끝물이라는 뉴스가 퍼지는 중이다. 웨이팅이 부쩍 줄었고 재고가 남아돈다고 한다. 호들갑일 수도 있으므로 속단하지는 않겠다. 아마 글이 발행될 즈음 두쫀쿠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탕후루처럼 사라질지, 마라탕이나 소금빵처럼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을지. 아직은 판단이 잘 안 선다. 인터넷 밈의 유행을 점치는 일은 여름철 기상예보만큼이나 불확실하다. 그런데 왜인지 두쫀쿠가 조금 더 유행하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정확히는 두쫀쿠를 둘러싼 다정함의 유행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렇다.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나는 두며 들었다. 오늘부로 두쫀쿠 유행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테지만 두쫀쿠는 〈슬램덩크〉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 무슨 아무 말이냐고 화를 낼 독자에게 사죄드린다. 나 또한 두쫀쿠를 처음 접했을 때 괴식이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물론 유행하는 음식 밈이 다른 음식 밈과 더해져 끔찍한 혼종이 생기는 일은 흔하다. 두바이 초콜릿이 유행할 땐 두바이 크로키가 나왔다. 역시 뇌절의 민족이다. 두쫀쿠는 뭔가 달랐다. 쫀득쿠키와 두바이 초콜릿은 한물간 뒷방 늙은이자 언더독이다. 그 둘이 만나자 크나페를 마시멜로 피를 감싸 만두처럼 빚는 창의적인 레시피가 탄생했다. (레시피를 안 지키면 안 두바이 안 쫀득 쿠키, 두바이 딱딱강정을 만든 안성재 셰프처럼 놀림거리(?)가 된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에 겉촉속바 식감이 더해진 궁극의 디저트가 탄생한 것이다. 한마디로 두쫀쿠와 〈슬램덩크〉는 언더독 서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쫀쿠는 허니버터칩과 장인약과처럼 유명 브랜드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다. 개인 카페에서 탄생한 수제디저트다. 표준화된 맛을 가진 공장제와 다르다. 만두가 피와 소의 비율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듯 두쫀쿠도 그러하다. 각 재료의 함량에 따라서 촉촉과 퍽퍽으로 나뉘며 맛도 제각기다. 속임수도 안 통한다. 원물 함량을 정직하게 적어야 손님이 사먹는다. 이렇게 두쫀쿠를 만들 땐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선다. 원조 가게도,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언더독 서사에서 금수저 캐릭터를 욕하듯 대기업이 개입하는 순간 꼴불견이 된다. 모두가 부르짖는 공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두쫀쿠는 기반 하나 없이 실력으로 승부하는 진짜 공정한 장을 만든다. 그렇게 두쫀쿠가 자영업자의 생계를 버티게 하는 디저트가 되었다가 저물고 있는 것까지가 언더독 서사를 완성한다.
출처: 안성재 셰프 유튜브
거기에 두쫀쿠 유행은 다정함을 느끼게 한다. 다정함은 노고를 참고 헤아리며 타인과 연루되려는 마음에서 생긴다. 두쫀쿠 유행의 핵심은 두쫀쿠를 직접 만드는 두쫀쿠 챌린지다. 챌린지는 대부분 카페에서 사먹으라는 결론에 이른다. 〈흑백요리사〉 시즌1의 박준우 셰프도 유튜브에서 두쫀쿠 만들기는 딱 한 번으로 족하다고 말하며 “사드세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만큼 두쫀쿠 만들기는 고되다. 재료도 구하기 어렵고, 비싸며, 마진도 얼마 안 남는다. 두쫀쿠 챌린지는 단어 그대로 자영업자의 노동 강도를 몸소 체험하는 도전(Challenge)이 된다. 원재료 품귀로 두쫀쿠 값이 올라도 노고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이유다.
출처:박준우 셰프 유튜브
수고롭게 탄생한 두쫀쿠는 또 다른 다정함으로 이어진다. 추운 날씨에도 가족이나 애인, 친구, 동료를 위해, 혹은 자신에게 선물하려고 오픈런하는 사람은 속된 말로 호구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두쫀쿠 한 알에는 자영업자의 노고와 진심을 전하려는 마음과 거기에 비례하는 웨이팅 시간과 다정함이 꾹 눌러 담긴다.
“다정함은 우리 시대의 펑크다.” 202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센티멘탈 밸류〉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한 말이다. 두쫀쿠도 우리 시대의 펑크다. 당연히 두쫀쿠는 호불호가 갈린다. 거기까지는 간섭할 수 없는 취향의 영역이다. 다만 가성비와 립스틱 효과를 운운하면서 두쫀쿠가 사치재라는 사람을 볼 때마다 의아하다. 각박한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리추얼로 야식을 먹는 것보다는 두쫀쿠를 먹는 편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두쫀쿠가 가격에 비해 작아서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두쫀쿠를 선물해야 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 속 인물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버리는 세상"을 꿈꾸었듯 나 또한 두쫀쿠로 서로를 뒤덮어버리는 세상을 꿈꾼다. 두쫀쿠 하나에 연루되는 수많은 이의 손짓이, 시간과 기다림이 무사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아킴 트리에 감독 출처:Joachim Trier at Cannes Film Festival, 2025. Courtesy and photograph: Kirsty Sparow/Getty Images
김경수 @vivre_wasavie
영화평론가. 인터넷 밈과 대중문화, 책에 관해 쓰는 일도 한다.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코아르>에 영화 비평을, <릿터>에 서평을 연재하는 중이다. 단행본으로는 석사 논문을 고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이 있다. 만성적인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영화를 볼 때 가끔 졸음이 밀려든다. 지금은 두 권의 단행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