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 까르보불닭과 두부 한 모
"밥은 잘 먹고 있지?" 엄마와의 통화는 항상 이 질문으로 끝난다. "밥은 잘 먹어."라고 답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로 잘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몇 년 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까르보불닭, 뿌링클, 마라탕, 아니면 엽떡. 까르보불닭은 나에게 공깃밥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음식에든 함께하는 것.
먹는 것의 선택지가 넓지 않았다. 건강하게 먹겠다고 월남쌈을 시켜놓고 "먹는 게 너무 재미없다"며 결국 자극적인 걸 추가로 시켜 먹는 그 밈처럼, 나 또한 그랬다.
"재밌는 식사" 밈, 유튜버 찰스엔터의 ‘맛있을 때 추는 춤’
그러다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패킹에 흥미를 갖게 되고 캠핑 장비를 사다 보니, 부업으로 배달까지 해야 했다. 수익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던 와중, 눈에 들어온 게 식비였다.
가계부를 써보니 식비밖에 안 보였다. 그길로 집 근처 시장으로 갔다.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치 음식을 미리 만들어두기 시작했다. 자주 해 먹은 건 카레와 파스타. 실패하기 어렵고 맛이 균일하며, 얼렸다가 먹어도 맛 변화가 크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자 배달 앱을 켜는 것보다 가스불을 켜는 게 익숙해졌다.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백패킹은 자연스럽게 트레일러닝으로 이어졌다.
파스타와 닭볶음탕을 준비했던 날
트레일러닝은 산을 달리는 운동이다. 포장도로가 아니라 흙길과 돌길,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린다. 주말마다 산을 뛰고 돌아오면 저녁이었다. 카레와 파스타를 만들 여유는 사라졌다. 직접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된 후라 비슷한 대안을 찾다 보니 냉동 도시락으로 눈이 갔다.
처음엔 쿠팡에서 제일 싼 걸 샀다. 하지만 활동량에 비해 양이 너무 적었다. 더 좋은 걸 찾을수록 값은 비례해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영양성분을 갖춘 냉동 도시락을 찾게 되었다. 특히 단백질량을 따졌다.
단백질 몇 그램, 칼로리 몇 킬로칼로리. 까르보불닭을 먹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숫자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숫자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자연과 냉동 도시락으로만 삶을 유지하다 보니 다시 자극이 그리워졌다. 다시 한번 내 삶에 까르보불닭 같은 게 필요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이 아닌 다른 자극. 트레일러닝을 잘하고 싶었다.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잘하는 사람들의 훈련법을 찾아보게 됐다.
킬리언 조넷Kilian Jornet. 트레일러닝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그는 살로몬과 15년을 함께하다 캠퍼Camper와 손잡고 ‘노멀NNormal’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덜 만들고 더 오래 쓰자’는 철학으로. 그런 사람이 뭘 먹는지 찾아봤다. 파스타, 감자, 콩류. 채식에 가까웠다. 한국의 트레일러너 김지섭 선수도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 달리는 사람들은 숫자를 넘어서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까지 살피고 있었다. 닭가슴살만이 단백질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때 발견한 게 두부였다. 한 모에 천 원 남짓. 생으로 먹어도 되고 들기름에 구워도 된다. 라면에 넣어도 되고 으깨서 나물에 섞어도 된다. 두부가 식재료의 세계에서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지 그때 알았다.
과거에 까르보불닭이 나의 공깃밥이었다면, 이제는 두부 한 모가 나의 새로운 공깃밥이 되었다.
밥 해 먹기 귀찮을 때 두부 한 모만큼 편한 게 없다.
잘 먹는다는 건 단순히 좋은 걸 먹는 게 아닌 것 같다. 정형화하기도 어렵다. 영양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내 말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꾸준히 음식과 몸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왔다.
얼마나 건강하게 먹고 싶은지, 요리할 시간이 있는지, 식비를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나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은 무엇인지. 이러한 조건들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만약 지금 나에게 잘 먹는 단 하나의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주변에 요리 잘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세요.”
친구든 부모님이든 이웃이든 상관없다. 나 같은 경우는 엄마 집에 자주 가려고 노력한다. 가면 반찬이 생긴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안 든다. 무엇보다 맛있고 건강하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해주자. 거창한 요리일 필요 없다. 두부 한 모면 충분하다. 그러면 돌아오게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지난번에 준 제육볶음 맛있던데? 어제 맛집이라고 웨이팅 해서 먹었는데 네가 해준 게 더 맛있더라."
웨이팅 맛집보다 맛있다는 말만큼 요리하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말은 없다. 까르보불닭보다, 두부보다, 이 한마디가 우리에게 더 건강한 식사를 만들어줄 것이다.
통영에서 보내주신 감사한 음식들. 해조류 무침, 다시마, 물메기탕, 그리고 LA갈비와 구운 김.
이창훈 @085darling
출퇴근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이고 밥 해 먹는 삶,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삶, 꽃을 가꾸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웰니스 스튜디오 <무브오브투데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