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 지금 당장 응답해야 한다! (정말로?)

하미나 ─ 지금 당장 응답해야 한다! (정말로?)

한국에서 활동가로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급히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을 매일같이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성명문을 쓰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뉴스를 확인하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사건의 진행 사항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을 일상을 살아가며 반복하다 보니 금방 번아웃이 왔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하니 가까운 활동가 친구들과 마찰이 잦아졌고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당장의 대처가 필요해 보이는 일에 주변 동료가 의견을 같이하지 않거나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것을 보면 미워지기까지 했다. 지쳐서 차이를 소화할 힘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자면, 정말 그 일은 당장 응답해야 할 일이었을까?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태도를 뽐내기 위한 응답이 아니라, 무언가에 책임을 지고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스스로 공부하고 검토해 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성찰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대체로 즉각적인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만 하게 된다. 일련의 자극과 반응으로 반복되는 어떤 패턴을 근본적으로 부수기 위해서는 깊이 들여다볼 시간, 판단을 유예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집단 간의 갈등이 폭발 직전으로 팽팽해질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을 극단적으로 치닫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학살이 벌어지기 직전에는 의도적인 가짜 뉴스가 퍼지며 살육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빠르게 형성되기도 한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조선인 학살에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또 1931년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 농민이 다수의 중국 농민에게 맞아 죽었다”는 오보를 듣고 조선인이 천 명에 가까운 중국인을 학살한 것처럼.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사실은 급하지 않은가? 어떨 때 우리는 정말로 늦는다. 기회를 놓치고 되돌릴 수 없어진다. 나 역시 절반의 진실을 가지고 매번 우왕좌왕한다. 정답 없는 질문이지만, 응답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를 넘어 다음의 것들을 되돌아 볼만 하다. 1) 빠르게 응답하라는 압박 아래에서 내 관심과 시간을 빼앗아가는 존재는 누구인가. 2) 그것은 내 의지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인가. 3) 이 소식은 내게 어떤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폭력을 멈추게 하는가, 아니면 폭력을 정당화하는가. 곧,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하미나 @heresmina

작가. 베를린에 거주하며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아무튼, 잠수』와 다수의 공저를 썼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여섯 명의 시인들로 구성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