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화 ─ 당신 얼굴 앞에서

문주화 ─ 당신 얼굴 앞에서

관객과의 대화(GV)에 앞서

 

‘감독님의 영화 잘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GV)는 예외 없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응용형으로는, ‘좋은 영화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보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잠시나마 잊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감사함을 주저 없이 나누는 이 순간을, 나는 평론가로서도, 관객으로서도 애정 한다.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는 보통 40분 안팎으로 진행된다. 다음 상영 회차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영화와 영화 사이, 좁은 틈에서 일어나는 대본 없는 짧은 즉흥극이다. 


물론, 모더레이터로서 나는 질문을 가능한 한 많이 준비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예상 질문의 순서대로 진행된 적은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실행되지 못할 필패의 시나리오를 매번 구상하는 셈이다. 이유인즉슨, 영화관에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관객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낯선 질문이 나의 시나리오에 틈입하는 순간, 4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은 세상에 오직 단 한 번 시연되는 즉흥적인 연극의 형태를 띤다. 다행스러운 점은, 여태껏 내가 만난 감독들은 이런 즉흥극을 즐기는 자유로운 창작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기 직전, 나는 감독들에게 늘 묻는다. ‘혹시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이 있으실까요?’ 그리고 언제나 같은 답을 듣는다. ‘아니요, 없어요. 무슨 질문이든 좋습니다.’ 


오랜 시간 연모해 오던 감독 혹은 배우와 얼굴을 마주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양조위의 오픈 토크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올 때, <중경삼림>와 <화양연화>의 장면들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졌던 것은 물론이며, 덕분에 픽션과 현실이 눈앞에서 뒤섞이는 어지러운 경험을 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은 본격적으로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교란시키는 영화다. 영화는 이란의 또 다른 거장 감독, 모흐센 마흐발바프를 사칭한 사브지안을 추적하는데, 법정 장면과 재연 장면이 위계 없이 뒤섞인다. 아름다운 것은 영화의 결말이다.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은 법정에서 죄를 사면받고 나오는 사브지안을 마중 나온다. 사브지안은 사칭을 해서라도 닮고 싶었던 감독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는다. 둘은 함께 꽃다발을 사서 오토바이를 타고, 사브지안의 거짓말을 믿었던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구분하던 분할선이 완벽하게 허물어진 그 순간을 카메라는 조용히 지켜본다. 나는 이 지독하리만큼 감동적인 시퀀스가 관객과의 대화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꾸며진 이야기가 현실로 침투한 기이한 사태. 우리는 긴장과 설렘이 진동하는 감독의 얼굴 앞에서, 나는 당신이 꾸며낸 이야기에 이끌려 삶의 한 부분을 내어주었노라 고백하게 된다. ‘감독님의 영화 잘 보았습니다.’는 모든 고백의 첫 문장이다. 이 내밀하면서도 공개적인 고백을 하는 당신은, 더 이상 단순한 관객이 아니다. 


올해 30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역대 최고의 상영작과 게스트 목록을 발표했다. 64개국 241편의 영화가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한 31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나는 오늘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들, 혹은 배우들에게 건넬 질문들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한, 이 질문들이 순서대로 낭독되지않기를 바라고 있다. 감독의 얼굴 앞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픽션에 거침없이 동참할 관객이자, 즉흥극의 주동자인 당신들의 질문과 얼굴이 너무나 궁금하다.


*글의 제목, ‘당신 얼굴 앞에서’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공개된 홍상수 감독의 26번째 장편영화이다. 배우 이혜영의 아름답고 견고한 클로즈업이 영화를 주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