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 가해자의 마음

하미나 — 가해자의 마음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어쩐지 나는 자꾸 그들의 맥락과 상황, 마음을 상상하는 일을 멈추기 어려웠다.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99.9%의 같은 유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 상황이나 수용소 상황에서와 같이.

또 다른 측면은, 가해의 이야기가 피해의 이야기보다 훨씬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6년을 꽉 채워 500여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과 글쓰기 수업을 해왔다. 수천 개가 넘는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해를 제대로 직면하려는 글을 만난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자주, 잘 말하고, 쓰며 치유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크고 작은 끔찍한 일들은 누구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까?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지낼 때에도, 나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혹은 가해자 주변에 의도적/비의도적으로 방관한 사람들이 제대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직시하고 일관성과 책임감을 겸비하며 응답하는 일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은 횡설수설하고 우왕좌왕하고 분열하거나 도망친다. 

자신의 어두움을 직면하는 일은 그만큼 충격적으로 놀랍고,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불편한 일인 것 같다. 나는 가해 행위 역시 행한 자의 영혼에 깊은 균열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피해의 고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처이지만, 마찬가지로 직면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이야기는 가해자의 내면에서조차 종종 은폐된다. 이러한 질문을 품고 살며 참고 했던 콘텐츠 중 인상 깊었던 조선인 전범 다큐멘터리 하나를 소개한다. 

 

CBS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

1945년 일제가 벌인 태평양 전쟁 당시 징집되어 포로 감시원으로 살다, 전쟁이 끝난 뒤 대부분 사형된 조선인 전범들이 있다. 정혜윤 PD는 마지막 남은 조선인 전범 이학래씨를 추적한다. 정 PD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문상의 유서 내용과 1991년 조선인 전범들이 제기한 재판의 핵심은 결국 '나의 무지에 분노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 이는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의 핵심이기도 하다. (…) 이들을 두고 이야기할 때는 항상 '가해자냐, 피해자냐'라는 공방이 벌어지는데, 결국 '그래봤자 너는 가해자'라는 식으로 흐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그들의 진술이에요. '양심의 착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확신에 차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 돌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이야기죠."

출처: https://m.nocutnews.co.kr/news/amp/5240313

 

그 외 참고할 만한 콘텐츠: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책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하미나 @heresmina

작가. 베를린에 거주하며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아무튼, 잠수』와 다수의 공저를 썼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여섯 명의 시인들로 구성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