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 Open the door

김현지 — Open the door

내 작업실은 대로변 1층에 위치해 있는데,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인지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거신다. 누가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눈이 마주치고 곧 문이 열리는 식이다. 

문은 대체로 아주 철학적이고 중대한 용건에 의해 열린다. 존재에 대한 표명 요구. 어르신들은 묻는다. 당신은 누구냐, 당신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다행히 나는 꽤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가 인연을 믿는다. 우연한 대화가 내 인생을 어떤 쪽으로 바꿀지 모른다는, 아마도 좋은 쪽일 거라는 대책 없는 낙관을 가졌다. 그래서 반갑게 설명했다. 평소에는 작업실로 쓰고 종종 독서 클럽을 열고 있어요.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설명했다. 내겐 명쾌한데 어르신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뭘 한다는 거야. 서점이라는 거야? 

고민 끝에 사업자를 추가 등록하고 이런 문구를 써 붙였다. 그리곤 책을 딱 다섯 권만 가져다 뒀다. 더 쉽게 이해받고(더 쉽게 꼬드겨) 어르신들과도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 욕심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기대와 달리 문이 열리는 일은 압도적으로 줄어들었다. 젊은 사람이 차린 무지하게 영세한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뭐라도 팔아 줘야 하는 공간으로 이해되어 심리적 장벽이 생긴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유리창으로 살펴보기만 해도 피곤할 정도로 반항적인 큐레이션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종종 마음 맞는 사람들이 별말 없이 책을 사갔다. 많으면 하루에 두 번? 


어느 날 어떤 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번에 당신에게서 책을 사갔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그 책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이에요. 당신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멜랑콜리에 동의하나요? 

나는 매우 난감했고 쑥스러웠다. 좋아하는 책을 판다고 써 붙여두었지만 정작 나는 『검은 태양』을 완독하지 않았으며 얼핏 살펴본 바 비치해 두면 좀 폼이 날 것 같아 가져다 두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의 피드백은 너무 유창하고 자세했다. 나는 어… 어… 당황하다가 결국 그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분이 안경을 고쳐 쓰며 이렇게 말했다. “어? 말하는 거 보니까 완독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열심히 안 읽었군요.” 


하… 그 손님은 은퇴한 교수였던 것이다. (이하 교수님)


“열심히 안 읽은 건 그렇다 치고, 여기는 뭐 하는 공간인가요? 지나가다 보면 종종 사람들과 책을 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데.” 

나는 교수님의 감지력에 벌벌 떨며 모임을 하던 순간을 보신 것 같다고, 이곳을 독서 클럽으로 운영하고 있고, 평소에는 작업실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슨 작업을 하는데 작업실이라고 해요?” 

나는 왠지 모를 창피를 무릅쓰고 글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교수님은 자기가 마침 문화 내러티브를 가르치다가 막 은퇴했다며, 은퇴 후에는 어린이들과 동화책을 읽는 모임을 하고 있다며, 너무 반갑다며, 최근에 쓴 글이 있으면…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교수’라는 상대의 위치에 짓눌린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 모든 허세를 동원해 쓰고 있던 독후감을 즉시 인쇄해 보여드렸다. 그런데 교수님은 플러스펜을 꺼내 들더니 내 글 위에 취소선을 긋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취소선을 마구 그으며 자기를 소개했다. 연극을 주로 공부했고, 수행성의 연구자였고, 이 근처에 산다, 쓰신 글에 지금 재정의가 없는데 알고 계시죠, 분량이 늘어나야 주제가 수거가 되는 글이므로 분량을 늘리시고, 근데 우리 관심사가 비슷한 것 같아 반갑습니다… 

피드백 섞인 산발적 소개를 듣고 있던 나는 수행성이라는 말에 번쩍 눈이 뜨여 저도 관심이 많은 분야라고, 특히 에리카 피셔 리히테의 『수행성의 미학』이라는 책을 좋아한다고, 그 책을 읽고 이 공간에서 독자들과 모임을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그거 내가 번역했는데!!!"라고 외치시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교수님은 종종 작업실에 찾아왔다. 우리는 책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제 마음대로 읽어 제끼는 독자였고, 교수님은 영락없는 아카데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같은 책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말했다. “현지씨가 가져다 둔 책들은 전부 혁명을 꿈꾸는 책이네요.”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 중인 혁명, 포기한 혁명, 혁명이라고 착각했던 혁명…

교수님이 사무실에 놀러오면 나는 독서모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잔뜩 자랑한다. 대체로 혼자서 읽었을 때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난 뒤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자랑이다. 나는 우긴다. 독서모임이야말로 수행성의 진정한 미학이라고, 변환이라고, 혁명이라고. 

교수님은 이론의 입체성과 정합성을 이야기하며 표면적으로 읽지 말라고 꼬장꼬장한 피드백을 남기면서도, 아카데미 안에만 있었던 사람의 습관 같은 말이니 흘려들으라고 하신다.

많이 다르지만 천천히 재미있게 사귀어가기로 우리는 함께 결정했다. 언젠가 같은 책으로 스터디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챙겨주기로 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잘 알겠는데, 교수님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는 모르겠다. 

몸과 몸들이 이렇게 자꾸만 만나는데, 알고 모르는 것이 중요할까. 요즘 내게 중요한 것은 ‘참여한 관객이 행위자로 변화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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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용은 에리카 피셔-리히테, 『수행성의 미학』, 김정숙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7에서.

 

김현지 @4343282

독서클럽 QZK를 운영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책과 영화를 소개해왔다. 요즘은 몸과 몸의 만남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