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지 — 베니스 비엔날레 다이어리

황예지 — 베니스 비엔날레 다이어리

(표지 여행사진: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 파빌리온, 2026)

베니스에서 돌아온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이쯤 되면 여독이 풀릴 만도 하건만, 여전히 날마다 다른 시간에 잠들고 예술이 좋다가 싫다가 한다. 마감일을 준수하는 게 오래 들인 습관인데 처음으로 연재 마감을 한 주 미루기도 했다. 미룬다고 원고의 질이 좋아지는 건 절대 아니지만, 차분히 속을 달랠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베니스에서 본 작품들이나 그때의 분위기는 아직 좀 더 곱씹어 봐야 할 것 같고, 이 일기는 베니스 비엔날레 주변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여름엔 찬물에 밥 말아 먹는 게 괜찮지 않던가. 그런 싱거운 마음으로, 중앙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요즘은 싱거운 게 그립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별들의 잔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오스카나 칸, 그래미 어워즈처럼 쉼 없이 반짝거려 결코 내가 갈 일은 없는 곳, 관객으로 가는 것도 내심 심드렁했던 곳. 그도 그럴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는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삼은 전시가 없었다. 역대 미술전과 건축전에 여성 사진가의 출품 사례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다른 국가관 역시 사진 매체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일이 드물었다. 2013년, 앙골라 파빌리온에서 사진가 에드슨 샤가스Edson Chagas의 사진전이 열렸다.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는 《백과사전 궁전 The Encyclopedic Palace》이었다.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조니Massimiliano Gioni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이라는 무한한 세계를 한 장소에 압축하려는, 어리석고 거대한 욕망이라고 해설하며, 발명가이자 예술가인 마리노 아우리티Marino Auriti의 괴짜 같은 개념, 인간 지식의 총합을 담는 건축 모형 백과사전 궁전을 데려왔다.  

앙골라 국가관은 에드슨 샤가스의 연작을 《루안다, 도시 백과사전 Luanda, Encyclopedic City》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궁전을 지을 필요 없이 도시 자체가 백과사전이라고, 총감독의 질문에 제법 매서운 대답을 돌려준 큐레이토리얼이었다. 그 사진전은 여러 의미로 이례적이었다. 앙골라의 첫 국가관 참여 전시였으며, 아프리카 국가관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전시가 되었다. 사진 매체가 주가 되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 전시가 여러모로 통쾌했다. 미술의 천덕꾸러기 역할을 하다가도 판을 흔들고 통쾌함을 거머쥐는 것이 사진 매체의 매력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해인 2014년, 노순택 작가의 올해의 작가상 수상에서도 같은 종류의 쾌감이 일었다. 

한국관에 사진가가 선발되어 간다면 누가 좋을까? 아무래도 김옥선, 노순택, 홍진훤 중 한 명이 좋지 않을까? 김옥선 작가의 <베를린 초상>을 한국관에서 보면 정말 이상하겠다! 한국관은 자연광이 들고, 유별나게 생겼고, 독일관 옆에 있으니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베니스에 도착해 있었다.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짐을 단출하게 싸며 다짐한 건, 화려함에 속수무책 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마주한 풍경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이리저리 윤슬이 매달려 있고, 도시의 구성물이 네가 안 예뻐하고 배기겠냐 하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순순히 예쁘다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눈부시게 예뻤다. 본섬 입구에서 관광세를 걷는데, 이곳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현대미술 숭배자 혹은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좋은 음식이나 좋은 옷은 됐고. 알뜰하게, 현혹되지 않은 채로 이곳에서 공부하고 가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수년 만에 만나는 동생이 나를 마중 나왔고, 그가 오는 길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 소비 촉진의 도시인 것 같아.” 하고 단숨에 답했다. 관광지야말로 인간과 장소가 기이하게 라포를 형성하는 공간이 아닐지. 오키나와, 몇몇 섬의 소설을 읽으며 관광지에 대해 달리 생각할 수 있었다. 베니스의 갈매기들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다. 관광객들이 쥐고 있는 빵, 샌드위치를 잽싸게 물고 멀리 날아갔다.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칭얼거리다가 홀연히 영국으로 가버린 동생이라, 성장하고 있다거나 큰일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로렌스 아부 함단lawrence abu hamdan과 함께 음향 증거를 분석하는 조사 NGO 단체 이어샷earshot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스에게 리듬을 좀 친다고 칭찬 받았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지만, 세르비아 침묵 시위나 인도, 파키스탄 등 콜센터에서 사용하는 AI 억양 교정 등 그들이 다루는 프로젝트의 무게가 대화를 이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다. 로렌스 아부 함단의 작업이 전시된 오프닝에 갔다가 동생의 숙소에서 와인을 이어 마셨다. 

인권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샤프한 글래스에 술을 담아 마시는 것. 너무나 얇은 유리잔의 목. 한 전쟁 사진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일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에 내가 동조하고 있음, 몸을 밀어 넣고 있음을. 이 미끄러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와 시답지 않은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점점 작업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로 옮겨갔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작업과 운동이 각자의 역사와 책임을 살아야 한다고 했고, 그는 완벽하게는 그럴 없다고 했다.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이어가며 인권 침해의 증거를 조사하고 확보해 국회로 가는, 그런 어른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그의 눈에서 앞선 이들의 행보를 믿는 굳은 심지가 보였다. 그 눈이 참 좋았다. 

우리가 목소리 높여 했던 건,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망각하지 않기. 망각하지 않은 채로 작업하기. 그가 먼저 떠나고, 그가 참여한 다른 작업물을 보았다. 그와의 작은 실랑이들까지도 그 작업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순간 멀리 왔다는 사실에 순수한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베니스는 자주 잠길 것이고, 이 또한 한때의 보물섬이 될 텐데. 

이 섬에 무엇이 남을까?

황예지 @yezoi

사진가. 사진웹진 더미덤피이미지 편집인.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전 《마고》, 《부족한 별자리》, 《수프 같은 것: 나는 아글라야 페터라니를 찾아가기로 한다》를 열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에세이집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과 『아릿한 포옹』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