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선 — 내 마음의 금과옥조
미친 듯이 돌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번아웃될 때, 나를 다시 세우는 문장들이 있다. 마감과 술자리, 납부와 책무로 채워진 삶에서 힘을 불어넣고 균형을 찾아주는 말들. 영혼의 닻이 되어주는 문장들.
I DO, I UNDO, I REDO
나는 하고, 없애고, 다시 한다. (루이즈 부르주아)
2000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의 개관전에서 루이즈 부르주아가 선보인 전시 제목이다. 거대한 터빈홀에 세워진, 각각 I Do, I Undo, I Redo라는 제목의 강철 탑 세 점은 높이가 약 9미터였고, 관람객들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 탑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시지프스가 돌을 올리고 다시 올리는 삶의 반복을 떠올리게 하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When inspiration doesn’t come, I go halfway to meet it.
영감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반쯤 나가서 영감을 맞이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Inspiration is for amateurs. The rest of us just show up and get to work. (…) All the best ideas come out of the process; they come out of the work itself.
영감은 아마추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나타나서 일을 시작할 뿐이다. (…) 최고의 아이디어는 모두 그 과정에서 나온다. 작업 자체에서 나온다. (척 클로스)
이 두 말을 겹쳐 놓고 나는 스스로에게 윽박지른다. “너무 안 써져. 영감이 필요해”라고 앵앵대는 내게, “그냥 해!”라고.
Le plus profonde est la peau.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이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오컬트 웹툰(<미래의 골동품 가게>)에도 인용될 만큼 널리 회자된다. 나는 외면을 꾸미는 일을 피상적이라고 폄하할 때마다 이 말로 반박하고 싶다. 갖춰 입은 자신이 그 자체로 작품이었던 프리다 칼로, 단순하고 검박한 삶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드러낸 조지아 오키프, ‘피부를 생성하는 행위’를 고안해 낸 하이디 부허, 기억의 감각적 창고인 옷으로 작품을 만들었던 루이즈 부르주아에게 외면은 오히려 가장 밀도 높은 깊이의 장소였다. 무엇보다, 내 멋대로 꾸미기는 비록 솜씨는 부족해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즐거운 취미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소서. (제니 홀저)
지난 40여 년간 텍스트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의 <경구들> 가운데 하나다. 1982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에 띄워진 문구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타인의 잘 다듬어진 일상의 쇼윈도에 늘 노출되어 있다. 그럴수록 이 문장은 유효하다. 나도 모르게 조종당하거나 불필요한 각성과 시샘에 휘둘려 ‘진짜 내 것’이 아닌 욕망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정렬해 정제된 기쁨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문장이다.
“인생을 가볍게 여겨라. 가벼움이란 피상성이 아니라 사물 위로 미끄러지는 것이며 마음의 무게를 더하지 않는 것이다.” (출처 불명)
어떤 책에서 읽었지만 출저를 적어두지 않았다. 내 삶이 불필요하게 심각해질 때 나는 이 문장과 함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Gymnastics>(1967)을 떠올린다. 리히터의 제작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그림과 이 문장은 나에게 삶의 지향점으로 짝지어져 있다.
안동선 @andongza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 에디터, 디렉터. 주로 문화·예술 영역에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