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 엉덩이부터 생각해보자

최인선 ─ 엉덩이부터 생각해보자

사람은 앞을 보며 산다. 거울 속 얼굴, 화면 위 메시지, 그리고 남들의 시선.

그런데 욕실은 조금 다르다. 욕실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유일하게 자신의 뒷면을 신경 쓴다. 엉덩이, 배설, 냄새, 감촉. 감춰둔 감각들이 그제야 차례로 호출된다. 장 뤽 엔니그는 《엉덩이의 재발견》에서 신체의 이면이 어떻게 은폐되거나 페티시화 되며 사회, 문화적 질서 안에서 작동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엉덩이는 단지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 권력, 유희, 감각, 수치심의 궤적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은밀한 신체의 감각을 다루는 장치들이 있다는 점이다.

변기, 수전, 욕조가 그것. 삶에 가장 많이 관여하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는 사물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사용하지만, 그 사물들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산다.

목욕은 오래전부터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기호였다. 로마의 테르마에(공중목욕탕)는 정치의 장소였고, 근대 유럽에선 위생과 계몽의 상징이었으며, 20세기 후반엔 향과 거품, 웰니스와 고요함이 덧붙여졌다. 욕조 속 물은 시대마다 다른 기능을 띠었다. 권력의 정결, 질병 예방, 감각적 쾌락, 셀프케어라는 이름의 심리적 회복까지. 최근에는 스마트홈 기술이 일상에 스며들면서, 욕실은 신체, 프라이버시, 위생, 감각, 데이터가 겹치는 가장 다층적인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변기 또한 흥미롭다. 배설은 생물학적 작용이지만, 그 처리 방식은 철저히 문화적이다. 앉느냐, 쪼그리느냐, 물을 붓느냐, 버튼을 누르느냐! 이 행위는 사회와 기술, 그리고 위생에 대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수전도 재밌다. 물이 ‘어떻게’ 나오는가는 인간의 상상계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바 온도, 수압, 각도, 소음까지 일상에 스며들어 작정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버리기 마련이다. 집에 있는 여러 방 중 욕실의 세계관이 제일 복잡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술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으로 기억한다.

욕실은 삶에서 가장 기술적인 방이지만, 가장 감정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들은 정교하지만, 그 위에서 벌어지는 감각은 늘 개인적이고, 비정형적이며, 즉흥적이다. 나는 55년 된 욕실 제조회사를 컨설팅하며 단순히 세라믹과 파이프를 본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몸이 어떻게 설계되고 있는지를 보았다. 사람은 언제나 얼굴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종종 뒷모습의 감각이다. 그 은밀함을 다뤄온 기술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일상 감정을 조용히 지탱하고 있었다.

 

최인선 @ahnadasia

풍월당, 유니텔클래시카에서 클래식 음악 크리에이터로, boan1942에서 현대미술 기반의 전시, 다원 예술 기획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삼성, LG, 라이카, 로얄앤코 등 글로벌 기업들과 아트 디렉터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