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지 — 베를린, 다큐멘터리, 레이빙

황예지 — 베를린, 다큐멘터리, 레이빙

세 번의 유럽 여행 동안 베를린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 예술 고등학교와 예술 대학을 다니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베를린에 대해 들었고, 그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어떻게 예술이 한 곳으로만 수렴하며, 그곳이 궁극의 장으로 여겨질 수 있냐고 괜한 객기를 부렸다. “히토 슈타이얼이 베를린 예술대학의 교수입니다.” 흥. “오메르 파스트가 베를린에서 활동합니다.” 흥.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내심 그곳에서 생성되는 담론에 늘 관심이 있었다. 

트럼프 집권 1기였던 2017년, 히토 슈타이얼은 ‘버블 비전Bubble Vision’을 제목으로 한 발제에서 팔란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팔란티어라는 수정구슬의 예측이 형편없고, 불가역적으로 왜곡을 동반한다고 했다. 이 구슬이 이렇게까지 조직화되고 무기화될 거란 걸 예견하고 한 이야기였을까. 상장 이후 주가가 폭등한 팔란티어의 배후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와 협력을 통한 이민자 추적 시스템이 있다. 세계는 점차 망가지고, 이미지는 점점 더 무자비한 무기가 되어간다.

 히토 슈타이얼, “버블 비전 Bubble vision”, Serpentine Marathon: GUEST, GHOST, HOST: MACHINE!, 2017 (출처: Youtube)


독일 예술계에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이후 내부 검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여러 핵심적인 행사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사진가 낸 골딘이 팔레스타인 지지 연설을 하는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았다. 미술관 측은 그녀의 연설 이후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발언 내용은 미술관의 입장과 다르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다. 유대계 미국인이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저런 목소리를 냈다는 게, 무너지는 윤리 아래에서 몸으로 사진을 찍고 몸으로 저항하는 이가 있다는 게. 내 사진의 구축점이 되어준 게 저 사람이다. 딱 저만큼, 불나비처럼 살다가 갈 수 있기를 염원할 뿐이다.

낸 골딘, “Are you listening Germany?”, Neue Nationalgalerie, 2024 (출처: Youtube)

 

클럽 베억하인berghain에 다녀오느라 얼굴이 파리해진 사람이 브란덴부르크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같이 다니는 여행에 체력 조절을 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그는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베를린에는 없을 거라고 초를 치기도 했는데, 지내다 보니 사실이었다. 이 도시에 왔다는 이유로 전시를 보러 다니고 싶진 않았다. 리서치의 연장선으로 한 작가의 생전 파트너를 만나거나 서커스를 보았다. 그리고 파리한 그의 일정에 탑승하기로 했다. 디제이로 활동하는 그의 일정은 베억하인에 가고, 베억하인에 가고, 또 베억하인에 가는 것이었다. 베를린만큼 회자되는 그곳에 이미 물려버렸지만, 그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 레이빙을 좋아했던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한 친구가 울적한 20대를 어떻게 버텼냐고 물었을 때, 나는 별 고민 없이 레이브라고 답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여러 클럽에 다녔고 한 클럽에 우정 비스무리한 마음이 생기면서 주에 하루이틀은 음악을 듣고 춤을 췄다. 친구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울고 고개 숙이고 춤추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같이 엉망이 되고 탈진한다는 거였다. 그땐 체력 0%의 시간이 큰 위안이었다. 그 시절 클럽 사장님이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 시절이 막을 내렸구나 했지만, 여전히 어떤 디제이가 내한하고 어떤 파티가 있는지 체크하곤 한다. 

도착한 주 목요일날 처음으로 베억하인에 입장했다. 밴이 악명 높다고 해서 긴장했으나 제법 순조로웠다. 선도부가 줄지어 있는 교문을 지날 때 이후로, 어떤 문이란 걸 지나며 긴장한 것은 처음이라 우스웠다. 공포스럽기도 했다. 씬을 지키기 위해 부러 조성한 이 공포가 꽤 영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은 주로 졸레Säule 라는 공간만 오픈하는데, 메인 스테이지가 아님에도 들어가자마자 털이 쭈뼛 섰다. 설계 측면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잘 구성된 가구처럼 공간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변태같이 계산해서 조성한 게 느껴져서 그랬다. 그간 음악이 수평적으로 퍼지게 들렸다면, 이곳에선 음악이 수직적으로 운동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내리 꽂히는 것 같이 들렸다. 직사각형의 평면도. 높은 층고. 짧은 단차를 주며 다가오고 멀어지는 조명. 경험한 중 가장 직선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고 느껴졌고 사진을 다루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게 굉장히 편안했다. 주말 파티에서 메인 스테이지를 비롯한 여러 스테이지를 누렸지만, 졸레가 가장 마음에 드는 스테이지였다. 

 

 

한 오디오 엔지니어가 레딧에 베억하인 청각 경험을 모델링한 음향 맵을 보았다. 졸레의 오디오 스택 구성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몸에 닿았던 음악의 질감과 파형을 더듬어 AI를 통해 맵을 그려 보았다.

 

 

전면에서 시작된 압력은 공간 중앙에서 한 번 더 다시 강화되고, 후면으로 갈수록 에너지가 확산되며 풀린다. 저중역은 몸을 감싸고, 중고역은 중앙 축에서 번개처럼 수직으로 낙하한다. 이는 정밀한 음향 분석이라기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그 공간에서 몸으로 감지한 음향 지도에 가깝다. 사진이 남지 않는 공간에서, 몸은 또다른 기록 장치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은 9시간, 어느 날은 17시간 베억하인 안에 있었다. 아마 뒤로 타임 테이블이 더 있었다면 그 이상 머무르는 것도 가능했을 거 같다. 1953년, 동독 시기에 지어진 열병합 발전소에 자발적으로 갇혀있는 경험은 제법 흥미로웠다.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레이빙이 굉장히 사진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중에 속해 있다가 탈피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재작년 한국에서의 비상 계엄 선포 이후 일어난 일련의 시위에 참여했을 때의 감각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점멸과 분해되는 음성 사이. 아마도 그 모든 것이 페티시적이지 않을 수 없으며, 삶과 죽음을 교란한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다. 하얗게 질린 아침 해가 뜨고 땀에 절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 고향에 온 걸 환영해. 이게 베를린이야. 모든 젊은이가 일과를 미뤄두고 춤을 추지. Welcome to my hometown. This is berlin. All the young people put off their work and dance.”     

여행 사진: 베억하인 앞에 있었던 그래피티, 2025

여행 사진: 베를린에서의 주식이었던 얼굴만한 케밥, 2025


베억하인 곳곳에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낙서가 보였다. 베억하인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는 다르게 학살에 대해 침묵하며 친팔레스타인 디제이들과 논쟁이 생기자, ‘Ravers for Palestine’ 보이콧 이상의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음악을 멈추자는 요구라기보다, 음악이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묻는 연대로서 움직였다. 언제나처럼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 문제로 도시 전체가 열병을 앓고 있는 듯 했다. 예술이 어쩔 수 없이 징후와 맥락을 품고 있기에 예술적인 도시인 만큼 강하게 앓을 수밖에는. 국가 규범 바깥의 공간, 신체의 주권, 저항 정신이 콘크리트에, 베를린 문화예술 전반에 깊숙이 남아있다고 느꼈고 그것이 부디 잘 수호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흰 지팡이를 든 레이버, 휠체어를 탄 레이버, 노년의 레이버와 계단 옆에서 난잡하게 섹스하는 레이버를 보았고 나는 그것을 오래 보고 싶었다. 그걸 늙어서도 보고 싶다. 

『레이빙의 저자 매켄지 워크는 말한다. “좋은 레이브는 여전히 스펙터클이지만 최소한의 형식적인 요소로 축소된 스펙터클이다. 비트, 연기, 분산되는 빛. (…) 내용 없는 종교, 순수한 매체 형식을 향한 신앙.” 스펙터클과 스펙터클 사이에 껴 있는 축소된 스펙터클, 친밀한 가장자리를 느꼈고 그건 숭고였다. 사진에 소홀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서점에서 사진집을 보다가 한 여자를 알게 됐다. 군돌라 슐체 엘도위Gundula Schulze Eldowy. 동독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와 노동자의 영웅적 이미지에 저항하는 사진을 찍는 여자. 이상화된 몸이 아닌, 평범하고 불완전한 몸을 담는 여자. 존재함은 이렇게 주체가 된다고 사진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2711개의 비석, 절멸과 저항을 밀어넣느라 급체를 한 건지 나도 그를 따라 얼굴이 파리해졌다.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계속해서 내게 일어났고 이건 몹시 사진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기회가 되면 베를린에 다시 갈 테고, 거기엔 응당 신나고 정치적인 함의가 있을 것이다. 

여행 사진: 베를린 장벽, 2025

여행 사진: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2025

군돌라 슐체 엘도위Gundula Schulze Eldowy, 「개 같은 밤의 베를린」 연작 중 ‘노동’,
바트 블랑켄부르크, 1985

 

황예지 @yezoi

사진가. 사진웹진 더미덤피이미지 편집인.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전 《마고》, 《부족한 별자리》, 《수프 같은 것: 나는 아글라야 페터라니를 찾아가기로 한다》를 열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에세이집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과 『아릿한 포옹』을 냈다.